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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다정하라

사랑하려면

by 신거니

1. 임영웅과 다정함

얼마 전 '가수 임영웅 씨는 왜 인기가 많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사실 임영웅은 인기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블루오션에서 홀로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와도 같다. 특정 연령대의 여성 층에서는 대체할 가수가 없다. '임영웅 덕에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라든지, '인생 처음으로 덕질을 시작했다'는 간증도 넘쳐난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든다. 트로트 프로그램 혹은 장르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왜 임영웅일까? 단순히 <미스터 트롯>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일까? 사실 그만큼 노래를 잘하거나, 외모가 뛰어나거나, 매너가 좋은 가수는 얼마든지 있다. 단지 '트로트를 부른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는 이토록 두터운 팬덤 문화를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그만한 트로트 가수도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기사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댔지만 그중 유독 눈길을 끌었던 건 임영웅 씨의 '다정함'이다. 기존 기성세대 여성들이 소비하던 가수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가진 남성성을 내세운 소위 '남자다운 오빠'였다. 남진이나 나훈아 등을 떠올려보라.


반면 임영웅은 팬들을 '남자답게' 휘어잡지 않는다. 도리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팬을 대한다. 시종일관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고통받아온 50대 이상의 여성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여기에 가창력과 외모가 더해지니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일으킨 것이다.


이는 50대 이상의 여성들도 '다정한 남성상'을 원하고 있으며, 최소한 그 달콤함(?)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징조는 이미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에서 벌어진 '욘사마' 열풍이다.


한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특히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약 20~30년 간의 시차를 두고 사회적 현상이 반복된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 이 역시 주목할만하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은 '욘사마'의 부드러움과 다정함에 반했고, 이는 한류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남편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지친 여성들이 콘텐츠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한 것이다.


2. KPOP과 다정함


최근 한국 음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아이돌 시장만 보아도 이러한 현상이 전방위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남성 아이돌은 다정하게, 여성 아이돌은 진취적으로 변하고 있다. 적어도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콘셉트와 노래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요즘엔 '여돌 전성시대'로 불릴 정도로 걸그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보이그룹이 상대적으로 여성팬에 치중하여 열심히 구애를 하고 있는 와중에, 걸그룹은 남성과 여성팬 양측에 모두 어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그룹인 블랙핑크, 아이브, (여자)아이들 등의 노래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삶과 마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떻게든 '삼촌팬'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양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BTS 역시 과거 보이그룹이 흔히 내세웠던 남성성이나 저돌성보다는 부드러움과 다정함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팬클럽인 아미 역시 BTS라는 구심점을 토대로 여러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임영웅의 팬클럽인 영웅시대가 전개하고 있는 여러 활동과도 맞닿아 있다. BTS와 임영웅이라는 지점에서 모인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 여성들은 '자신의 주체성'과 더불어 '파트너의 다정함'을 동시에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던 가부장적 문화와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빠르게 세태를 반영하는 음악 시장에서 이러한 니즈를 읽었고, 이에 반응한 것이다.


3. 연애와 결혼, 그리고 다정함


다정함에 대한 니즈는 이제 소위 가상의 벽을 넘어 현실의 관계를 규정짓기도 한다. 즉 여성들이 자신의 파트너에게 적극적으로 다정함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남자다운' 남성에 대한 수요도 여전하다. 다만 남자다움을 원하는 여성들 역시 남성성이 내재한 공격성이나 퉁명스러움 등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나에게는 따뜻'해야 한다.


여기서의 남성성이란 경제적인 능력이나 리더십, 추진력, 주체성 등을 의미하는 것이지 폭력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남성 입장에서 만약 연애나 결혼을 원하고 있다면 크게 둘 중 하나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남성으로서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다정함이다. 사실 다정함이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배려하는 자세, 이해하고 경청하려는 자세, 거슬리지 않는 말투, 사랑에 대한 표현, 적극적인 가사 및 육아분담 등이다. 그냥 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성향을 두루두루 갖추어야 한다.


이쯤 되면 연애 한번 하기, 결혼 한번 하기가 참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사실 저 두 가지를 모두 갖춘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일정 부분 대치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일에 투신해야 하는데, 그와 동시에 다정함까지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성공이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니까. 하지만 다정함은 모두가 갖출 수 있다. 성격은 가지고 태어나지만 인격이나 성품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다정하라, 최선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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