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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un 15. 2023

누가 칼 들고 협박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누칼협 담론을 분해해 보자

'00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줄여서 '누칼협' 담론을 찬찬히 뜯어보면 꽤나 흥미로운 사회적, 심리적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누칼협 담론은 대개 '사회-구조적 모순이나 의도적 사기범죄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하여 가해자나 사회가 아닌 피해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가장 이슈가 되었던 전세사기 사건이다.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를 향해 "누가 전세 살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 문장은 몇 가지의 전제를 깔고 전개되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1. 개인의 무한 책임: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할만한 극단적인 상황, 즉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의 고난은 온전히 개인의 잘못이다.


2. 각자도생: 머리를 굴리든, 돈으로 해결하든, 칼을 들고 나서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3. 거대집단에 대한 무한긍정: 사회나 국가는 잘못이 없다. 어차피 거대한 체계를 분석하는 것은 어려우니 개인에게 잘못을 돌리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에는 문제가 없을까?


1. 개인의 무한 책임: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할만한 극단적인 상황, 즉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의 고난은 온전히 개인의 잘못이다.

->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꼭 칼이나 총을 들이밀며 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강제성을 가지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개인이 그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구조적 맥락을 같이 짚어야만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2. 각자도생: 머리를 굴리든, 돈으로 해결하든, 칼을 들고 나서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 진보의 역사는 권리 대상의 확대, 즉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 외연이 넓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자력구제(ex. 보증금을 떼어먹은 집주인을 납치해 돈을 받아내는 행위)를 금지하는 건 사회질서의 유지와 더불어 공적인 제도와 체계에 의한 구제라는 책임을 규정한 것이다.


3. 거대집단에 대한 무한긍정: 사회나 국가는 잘못이 없다. 어차피 거대한 체계를 분석하는 것은 어려우니 개인에게 잘못을 돌리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된다.

->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국가는 권력과 더불어 구성원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있음에도 특정 구성원의 고통을 방기한다면 이는 국가로서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맥락을 알아야만 입체적으로,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이란 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다.


사실 누칼협 담론을 공공연하게 꺼내놓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은 위와 같은 '논리적 결함'과 더불어 '공감의 결여'에서도 기인한다. 공감은 고도화된 사회-감정 지능의 일부이다.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히 무정한 것이 아니라 지능이 부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공감을 받지 못해 사회적 곤경에 처하게 될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그 자체로 윤리적, 감정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호혜성에 기반한 이성적 행동이기도 하다.


침을 튀기며 피해자의 등에 2차 가해라는 칼을 꽂는 사람을 누가 신뢰할 것이며, 누가 도울 것인가? 기억하자. 아무도 '누칼협' 담론을 내뱉으라고 칼 들고 협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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