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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un 28. 2023

뉴진스의 핍진성

있을 법하지 않은 소녀들

이토록 빠른 시간에 정상에 자리에 오른 걸그룹이 예전에도 있었나 싶다. 뉴진스는 2022년 7월 데뷔 이래 1년이 채 안 된 기간 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뉴진스가 발매한 앨범은 국내 시장뿐만이 아니라 빌보드를 비롯한 해외 시장도 휩쓸었다.


뉴진스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BTS를 비롯한 세계적인 아이돌을 탄생시키며 성공 공식을 쌓아두었던 하이브의 기획력과 프로듀싱 능력이 유효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법한 '완벽한 소녀'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하이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재를 발굴하고,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잘 가공된 형태로 시장에 뉴진스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도 뉴진스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즐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이 '있을법한 사람인가?'라는 생각, 즉 핍진성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놀라우리만치 사람들의 니즈에 맞춘 걸그룹. 외모, 가창력, 댄스, 노래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을 주기 어렵다.


사실 걸그룹을 비롯한 연예인은 일종의 가공품과도 같다. 이들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여러 결점을 매끈하게 다듬어 미디어를 통해 가공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인간성'이니 '핍진성'이니 하는 순진한 잣대를 들이대는 자체가 잘못일지 모른다.


연예인이란 사람과 제품 사이 그 애매한 영역에 걸쳐있는 존재다. 여기서 뉴진스는 한발 더 나아가 시장의 니즈를 한껏 흡수한 그룹이다. 모두가 열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는 마치 잘 만들어진 애플 제품을 보는 기분이다. 두터운 팬층과 잘 다듬어진 외형까지. 문제는 뉴진스가 '사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에 있다.


사실 전통적인 세계관에서는 이를 대상화라는 이름으로 쉽게 비판할 수 있었다. 특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의 관념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에게는 정해진 쓰임이나 본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적인 세계관 내에서 인간은 신에 의해 쓰임 받기 위해 존재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인간이 스스로 쓰임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명을 받았다고 봐야 합당하다.


그래서 자진하여 쓰임을 청하는,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위 시장형 인간이 탄생한 건 실은 꽤나 독특한 일이다. 사실 뉴진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이름 아래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진풍경이다. 다만 뉴진스는 여러 미디어를 통해 보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전개할 뿐이다. 이러한 자각은 자연스레 페르소나에 대한 생각으로 옮아간다. 흔히 페르소나는 자아의 진정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특정한 상황에서만 꺼내놓는 일종의 가면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뉴진스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페르소나,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가공된 페르소나는 그들 자신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공고한 페르소나를 몇 가지 가지고 산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자연스레 쓰게 되는.


게다가 시장에 자신을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하는 시장형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아에 본질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고는 한다. 나 역시도 직장에서 보여주는 모습, 친구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다른데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뉴진스의 모습 역시 그 자신에게 귀속되는 자아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형태에서 인위성을 느끼는 것, 핍진성의 결여를 느끼는 건 왜일까? 그건 뉴진스가 보였던 성공 공식, 즉 하이브에 의한 철저한 기획과 훈련에서 기인한다. 사랑을 노래하고 코카콜라 광고까지 섭렵한 뉴진스. 그 안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진심이 어디까지 담겨있을까?


조금 치사한 비교일 수 있지만 BTS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는 결이 달라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팬을 자처하기엔 한없이 빈약한 호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BTS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건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단단하고 특별해 보인다.


아티스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가수 아이유가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났던 것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꼭 자신의 과거 경험을 줄줄 읊으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신념, 가치관, 취향, 색깔을 녹여내야 한다.


물론 뉴진스에게도 당연히 색깔이 있다. 실은 나 따위가 주절주절 말하기엔 너무도 분명한 색깔이. 다만 그 색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느냐고 한다면 고개를 젓게 된다.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보며 오늘도 뉴진스의 음악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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