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엔 익숙해질 수 없어서

그래서 나오려고 합니다

by 신거니

"신 사원은 딱 회사 체질이야! 내가 볼 땐 그런데."


전에 있던 부서의 팀장님이 말했다. 팀 회식 자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회사생활은 할만하냐는 질문이 오가는 와중에 난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수도 잦고 힘들어서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근데 다른 사람이 보면 천상 회사원인가 보다. 그런가 보다.


하기야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다들 곡소리를 내는 와중에 내가 가장 힘들다며 주저앉기도 민망하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들다. 노력이 부족한 건가? 그럴지도. 간절함이 없는 건가? 아마도. 하지만 나의 노력과 간절함에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엉뚱한 방향으로 노를 저어 가면 목적지에는 영영 닿을 수 없다. 적어도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


조금 여유로운 회사에 가면, 더 수평적인 직장으로 옮기면, 창의적인 업무 환경이 조성되면 좀 나아질까? 그렇겠지. 그러면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위계가 없어도 회사는 회사다. 그 앞에서 난 한없이 쪼그라드는 인간이다. 무엇보다 온전히 '내' 일을 하지 못하기에 쉬이 지치고 만다.






그나마 지금은 워라밸도, 고용안정성도 보장된 회사에 다니고 있다. 바쁘긴 해도 업무가 크게 복잡하지도 않고, 팀원도 이 정도면 괜찮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토록 마음고생을 한다면 어떨까? 모니터 앞에 앉아 공허하게 자판만 두들기다가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든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차오르는 스트레스를 눌러야만 한다면? 유난히 예민한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몸에 탈이라도 난다면?


최근에는 대상포진까지 걸리고 말았다. ("젊은 분이 어쩌다가"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는 그저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일주일을 쉬었다. 집에 가만히 누워 나 자신을 돌아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나를 닦달하는 상사도, 급하게 걸려오는 업무 전화도, 수백 개씩 쌓인 이메일도 없는 평온한 공간. 난 뭘 위해 일하는 걸까? 그 고생 끝에 얻은 것이 고작 대상포진이라면 나는 왜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지금은 대상포진이지만 앞으로는 뭐가 닥쳐올까?


퇴사를 결심했던 마음이 더 굳어졌다. 덤으로 퇴사에 회의적이던 부모님도 설득할 수 있었다. 대상포진의 소소한 성과랄까? 물론 안 걸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픈 기간 동안 선풍기 틀고 누워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상념>


1. 나는 내향적이다.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한다. 정 같이 일해야 한다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 주변을 채우고 싶다.


2. 나는 수평적인 분위기가 좋다.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다.


3. 나는 다채로운 일을 하고 싶다. 단순 반복에 실수만 잡아내는 행정적인 업무에는 쉽게 질려버린다.


4.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 자신이 성장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드는 그런 일.


5.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항상 그래 왔다.



결론: '팀장님, 저 회사에는 익숙해질 수 없어서 그래서 나오려고 합니다'라고 속으로만 소심하게. 하지만 행동은 신속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