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회사 밖이 아니라 마음 안에

결국은 마음이 문제다

by 신거니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드라마 <미생>의 이 대사를 알고 있지 않을까? 그만두려고 하는 이를 붙드는 마지막 족쇄 같다.


비록 전쟁터 같은 직장 생활이지만 매달 나오는 월급, 소속감, 조직생활을 무시할 수 없다. 대책 없이 밖에 나갔다가는 지옥을 맛보게 되리라. 자영업자 중 절반 이상은 삼 년 이내에 망한다. 디지털 노마드도 상위 10% 이내가 아니면 답이 없다. 창업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더럽고 치사해도 회사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그나마 낫다.


이런 조언을 듣고 '그래, 역시 회사가 최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애초에 직장에 만족한다면 고민을 할 이유도 없겠지. 대개는 막연한 두려움과 직장에 대한 불만 사이에서 끝없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회사는 매일이 전쟁터고, 언젠가는 밀려 떠나야 할 곳이다. 결국 직장인은 필연적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지옥은 회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에 있다.


마음이 지옥에 있다면 얼른 건져내야 인지상정이다. 냅다 상사 얼굴에 사직서를 투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 있나 살펴봐야 한다. 지옥인지, 전쟁터인지, 천국인지, 아니면 그냥 좀 지루한 버스 터미널 벤치 위에 있는지.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의 급훈은 '일체유심조'였다. 불교에서 나온 표현으로, '모든 건 마음이 만든다'는 뜻이다. 마음만 바꿔먹으면 회사에서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까? 상사의 잔소리도 달콤한 세레나데로 듣고, 박봉의 월급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여긴다든지.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건 분명 마음이 만든다. 하지만 마음은 결국 세상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모를까, 상사의 잔소리는 언제나 듣기 싫다. 얼음을 만지면서 '앗, 뜨거워'하면서 백날 되뇌어봐야 손에 동상만 입는다.


마음은 통제할 수 없다. 그저 살피고 어루만질 수 있을 뿐이다. 어루만지려면 그 순간에 스며들어야 한다. 마음은 오로지 현재를 정확히 비춘다. 바꿀 수 없는 과거도, 불확실한 미래도, 마음의 입장에선 말할 수 없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마음을 살피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 순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집중하면 된다. 회사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땐 어떤 마음 상태인지, 출퇴근길에는 어떤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등 말이다. 렌즈의 초점을 내면에 맞추고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 메모를 해도 좋고, 머릿속으로만 기억해도 무방하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만약 지옥에 있다면 삶의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지.


그리고 가능하면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보자. '기분이 참 좋았다'보다는 '6개월간 매진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팀원들끼리 마블링이 기가 막힌 한우 차돌박이 회식을 했더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세상 아직 살만하구나 하는 안도감, 역시 돈이 최고구나 하는 자본주의적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정도의 그림으로.


현실을 그려내는 초상화가 세밀할수록 내 마음을 보다 섬세하게 어루만질 수 있다. 선택의 기준점도 잡을 수 있다. 선택에는 항상 기준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이든, 타인의 시선이든, 집단의 논리든 간에 말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면을 기준삼아 행동하면 최소한 공허하지는 않다. 내가 나로서 살지 못했을 때 남는 그 씁쓸한 뒷맛이 말이다.






나도 내면을 열심히 관찰했다. 막연한 고통의 연장이 아니라 확실한 결단을 위해서. 가까운 직장동료와 있을 땐 행복했지만 업무에는 끝내 만족하지 못했다. 승진 운운하는 말이 나와도 설레지 않고, 모니터 앞에서는 공허했다. 자유를 속박당하는 이 숨 막히는 감정. 이걸 견뎌내는 이유가 매달 받는 월급 때문이라니.


견딜만하지만 계속할 순 없다. 마치 맛없는 음식을 매번 입에 넣는 기분.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나의 내면을 정확히 알 수 없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건 어쨌든 나 자신이다. 누군가는 내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겠지. 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사람은 누구나 짐을 지고 길을 나선다. 그 짐은 모두의 어깨를 짓누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삶은 고통이다'라는 문구가 살갗에 새겨질 만큼. 그 와중에 눈을 이리저리 돌려 짐의 크기나 무게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친구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버티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적어도 언제 어디서 버틸지는 내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아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