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빙하를 피하는 방법
리스크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한 가지.
주인이 먼길을 떠나며 종들에게 달란트(화폐의 단위)를 맡긴다. 시간이 흐르고 주인이 돌아온다. 한 종은 장사를 하거나 투자를 하는 식으로 돈을 착실히 불렸다. 그런데 다른 한 종은 돈을 잃을까 두려워 땅에 묻어두었다고 고백한다. 주인은 화를 내며 그 종을 쫓아낸다. 그리고 그 종의 돈을 빼앗아 다른 종에게 줘버린다.
성경에 등장하는 일명 달란트 비유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달란트는 신이 준 재능을 상징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힌다면 신이 부여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조금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 또 다른 리스크를 지게 된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말이 있다. 진정 피해야 할 리스크는 아주 서서히, 그리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치 아주 거대한 빙하처럼. 거기에 충돌하는 순간 돌이키기가 어렵다. 멀리서부터 방향키를 조금씩 옆으로 돌려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드넓은 바다에서도 충돌사고가 발생한다.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다. 삶이 불확실성의 연속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사는 게 곧 리스크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은 일정한 결과로 이어진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면? 그 또한 선택이다. 세상은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불확실성은 그 결정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퇴사를 하면 인생이 펼까, 아니면 꼬일까? 이 주식을 사면 가격이 오를까, 내릴까? 이 배우자를 택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파혼해야 하나? 사실 알 수 없다. 결괏값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리스크를 최대한 줄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리스크를 줄이려면 기댓값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일정한 선택이 나에게 가져다 줄 결과의 평균, 그게 기댓값이다. 기댓값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확률과 결과. 선택지에 따른 확률과 결괏값을 계산하고 둘을 곱하면 기댓값이 나온다. 그중 가장 큰 기댓값을 갖는 선택지를 고르면 된다. 이렇게만 보면 참 단순하다.
기댓값 = 확률(%) x 결괏값
기댓값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확률을 높이거나 결괏값을 높이면 된다. 문제는 이 양극단에 있는 이들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있다.
1. 결괏값을 생각하지 않고 확률만 높이는 행위
가장 확실한 길만 선택하게 된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예적금만 계속하는 거다. (아예 마늘밭에 돈을 묻는 사람도 있다) 예적금은 국채 다음으로 확실한 투자처다. 은행이 문을 닫지 않는 이상 확정 이율 1~2%를 보장받는다. 다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수익률은 0에 수렴하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에 이르게 된다. 이를 투자에서는 돈이 녹아내린다고 표현한다.
물론 종잣돈을 모으는 단계거나 결혼자금 등 용도가 분명하다면 예적금도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계속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빙하를 피하기 위해서다.
2. 확률을 생각하지 않고 결괏값만 높이는 행위
전자가 위험회피형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면 후자는 위험추구형이 흔히 겪는 유혹이다. 복권이나 도박, 투기가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받을 큰 보상만 생각하고 자신의 돈을 베팅한다. 복권도 그렇고 도박도 그렇고 사실 기댓값 관점에서 보면 돈을 잃는 구조다.
복권 1,000원 치를 사면 그중 절반 정도가 당첨금으로 배정된다. 즉 복권의 기대 수익률은 마이너스 50%다. 모든 당첨번호의 복권을 다 사도 오히려 손해를 본다. 도박도 마찬가지다. 게임마다 다르긴 하지만 모든 도박 시스템은 카지노 측에 조금 더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도박을 하면 할수록 돈을 잃게 되어있다.
양극단의 선택지는 그 자체로 리스크가 매우 크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 좋지 않은 결과로 치달아간다. 결국 적당한 확률과 적당한 결괏값을 통해 적당한 리스크를 지는 게 최선이다. 투기성 자산에 투자금을 몰아넣으면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금을 마늘밭에만 묻어두면 서서히 녹아내려 소위 말하는 벼락 거지가 된다.
장기투자, 분산투자, 적립식 투자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이는 결국 기술적인 영역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빙하를 먼저 발견하고 조금씩 리스크를 지려는 마음가짐이다. 거대한 빙하는 눈에 쉽게 띈다. 하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움직이는 주가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아무런 기술도 자산도 없이 맞이할 은퇴 이후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인생을 보다 더 길게 펼쳐놓고 삶의 방향키를 움직여야 한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동학개미운동과 최근 유행(?)하는 퇴사 릴레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띄는 현상이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금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지고 자산을 꾸려가겠다는 거다. 또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월급만으로는 집을 사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다른 대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난 이 현상에서 '주체성에 대한 갈망'을 읽었다.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것을 만들겠다는 욕망. 삶의 리스크를 스스로 지겠다는 욕망. 진정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은 불확실성을 한껏 끌어안고 주체적으로 사는 것.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