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것을 갖고 싶다

아직도 자라나는 어른이의 소망

by 신거니

어른이 되어 가장 좋았던 건 나만의 것을 드디어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아이는 별로 선택권이 없다. 나만의 공간을 소유할 수도 없고 물건을 마음대로 살 수도 없다. 비단 경제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실이나 학원 등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또래 친구와 나누는 시간도 대동소이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회사에 들어가면 돈이 생기고 내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조금 여유가 된다면 자취방이나 자차 같은 나만의 공간도 내 곁에 둘 수 있다. 물건을 사는 소비는 경험에 대한 소비, 관계에 대한 소비로 이어진다. 독서모임을 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하며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그런데 무언가 하나 빠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묘한 기시감이다. 난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소비하고 있는데 왜 가슴 한편이 허전한 걸까? 아직 손에 쥐지 못한 한 가지가 남아서다. 바로 일이다. 일을 하고는 있는데 이게 내 일이 아니다. 내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열심히 하지만 갈수록 의욕이 사라진다. 이건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대신 돈 받고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 뭐든지 나의 것이어야 의욕이 샘솟는 사람. 내가 그렇다. 항상 반쯤 풀린 눈으로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 거야라며 되묻는다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손은 바삐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이미 유체이탈 중이다. 회사동기가 그런 나의 눈을 보더니 영혼을 좀 담으란다. 천상 회사 체질은 아닌가 보다.






영혼을 담으려면 눈에 힘을 줄게 아니라 실제로 내가 기꺼이 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봤다. 학창 시절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내 것'은 일기장이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기장에 내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일상으로는 지면을 채울 수 없었으니까. 요즘으로 치면 에세이 스타일의 글을 쓰거나, 단편소설을 끄적이거나, 미래계획표를 적기도 했다. 누구 하나 보는 사람이 없으니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이제 내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 올라왔다. 당시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던 네이버 블로그에 하나둘씩 포스팅을 했다. 반응이 있든 없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이걸로 돈벌이를 할게 아니었으니까. 방대한 글이 쌓였다. 관심이 있던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보기도 하고, 중구난방 식의 헛소리도 올렸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그 안에서 공통된 선이 보였다. 주제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내 글은 공통적으로 '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난 항상 '내가 보는 세상'이 중요하다. 사건 그 자체,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캔다. 의미란 주관적이고 고유하다. 무채색의 세상에 색을 더하기도 하고 '나만의 것'을 가장 빠르게 만들어준다.


회사 일에 왜 영혼이 담기지 않을까? 내 관점, 내 의미, 내 색깔이 들어가지 않은 남의 것이니까. 업무는 손에 점점 익고 주변 동료와의 관계도 익숙해지지만 그 일에는 내가 없다. 수직적인 분위기 속에 내 목소리는 힘을 잃고 난 오로지 정해진 업무를 정해진대로 했는지로 평가된다. 실수를 잡아내려는 관리자만 넘쳐나고 가슴 뛰는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는 없다.






일에 의미를 담는 활동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적어도 나만의 전문성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시채용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대기업 10대 그룹 중 5개가 이미 공채를 폐지했고 SK도 내년부터 수시채용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스펙이 좋은 사람을 뽑아서 아무 부서나 배치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직무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거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력의 아웃소싱, 글로벌 소싱이 활발해진다. 재택근무를 통해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면 아예 국경을 넘어 해외에 있는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예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한 업무 자동화를 도입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쌀에 못 이겨 해외 생산시설을 미국 국내로 들인 나이키나 애플의 공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생산기계를 관리할 소수 인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무직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거 충분히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가능하겠는데?'였다. 물론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도 있지만 단순 사무직은 얼마든지 자동화가 가능하다. 더구나 자동화 프로그램은 매일같이 실수를 달고 사는 나와는 달리 오류가 없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가격이 보다 저렴해지고 경영자의 의욕만 있다면 내 자리는 금세 없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회사에서 쓰고 있는 구닥다리 프로그램이 역설적으로 내 일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책 <그냥 하지 말라>는 '나만의 것'을 꼭 가지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자아실현이나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밥벌이의 문제다. 나만의 고유함이 배제된 채 기능적인 숙달만으로는 금방 대체된다. 변호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직도 인공지능에 자리를 위협받는 시대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얼마나 나를 거기에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 내 고유한 스토리를 넣어도 좋고, 나만 알고 있는 전문성을 풀어내도 좋다.


소비자 관점에서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소비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든 게 다 드러나고 기록된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어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를 공유하며 나를 드러낸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성비 브랜드가 아니라 고유성을 가진 브랜드가 간택받는다.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고 스펙트럼도 넓어진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나만의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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