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인은 쉴 수 있을까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른이에게

by 신거니

회사를 다니며 가장 좋은 순간은 출근하지 않는 휴일이나 주말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사실 쉬는 날이라고 해서 특별하진 않다. 평소에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 낮잠을 한숨 자다가 책을 보는 식이다. 그렇게 일할 힘을 비축한다. 겨우겨우 살만한 체력을 만들어놓으면 다시 회사에서 쏟아내고 만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


가끔은 내가 걸어 다니는 보조배터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배터리가 방전될 때쯤 회사에서 나를 풀어준다. 집에 가서 배터리를 충전한다. 월요일을 맞이하기 싫어 버둥거리다가 결국 다시 출근길에 오른다. 주 5일 근무, 주 2일 휴식. 다시 주 5일 근무, 주 2일 휴식. 퇴직하기 전까진 계속 반복되는 삶이다.


주 2일의 휴식이라도 온전히 누린다면 또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짧은 시간에 자기 계발과 각종 취미활동, 모임, 이직 준비까지 끼워 넣어야 한다. 출근해서도 열심히, 퇴근해서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리고 있으면 죄책감마저 든다.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쉬거나, 또는 불안함 때문에 다른 일을 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쉰다는 건 거의 죄악시된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경쟁적인 문화가 결합된 탓이다. 덕분에 역동적인 나라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피로감도 엄청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쉬는 법을 잊었으니까. 더 이상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지쳐 쓰러지는 게 아니라면 K직장인은 쉬지 않는다. 쉬지 못한다. 출처모를 불안감이 개개인을 얽매기 때문이다.


시들해진 감은 있지만 '힐링'이라는 단어가 한때 이 사회를 관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힐링하지 못하는 사회는 힐링 담론을 생산한다. 이렇게 해야 행복하다, 이렇게 해야 잘 쉴 수 있다며 끊임없이 진격해오는 마케팅 문구에 오히려 더 지쳐간다. 힐링 열풍은 이 사회가 어딘가 병들어있다는 사실을 들춘다.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나 조급증이 그렇다.


학창 시절부터 한국인은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오히려 쉬지 않고 더 열심히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법을 배운다. 휴식은 대입을 위한 페이스 조절의 일환일 뿐이다. 대학에 입학하면 실컷 놀면서 네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거짓말을 들어가면서.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도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두가 내달려야 한다는 걸. 그리고 다른 대안을 그 누구도 섣불리 제시하지 못한다는 걸. 심지어 취업을 해도 또 뛰어야 한다.


휴식은 그렇게 항상 뒷전으로 밀려난다. 배가 아파도 묵묵히 밭을 갈았던 바보 이반처럼 계속 일해야 한다. '쉬는 건 죽어서 실컷 할 수 있다'는 섬뜩한 말도 들려온다. 그럼 대체 난 언제 쉴 수 있는 걸까? 사실 이 질문에는 맹점이 있다. 중요한 건 언제 쉬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쉬느냐다.






이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군대처럼 강제적인 환경이 아니라면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멈출 수 있다. 회사 내 제도를 활용하든, 퇴사를 하든 말이다. 쉬고 싶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사실 쉰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두려운 건 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참 역설적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쉬는 건데, 여전히 어떻게 쉴지 고민하다니.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낮잠만 자거나 천장만 바라보고 있기도 좀 그렇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좀이 쑤신다.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며 이런 고민은 더 깊어져 간다. 바깥활동을 잘하지 않는 나조차 답답할 지경이다. 어떻게든 안전한 집구석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동시에 쉼과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쉼은 일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걸까?


쉼 역시도 내 삶의 한 조각이다. 그 시간도 너무나도 소중하다. 흘려보내든 알차게 보내든 쉬는 시간은 에너지를 주고 활력을 준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과는 달리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받는 양보다 주는 양이 많으면 사람은 금세 고갈된다.


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적은 편이라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일정 수준 이상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게 일이든 음식이든 술이든 관계든 뭐든 간에. 대신 꾸준히 달릴 수 있게끔 조절을 하는 편이다. 열정적으로 불타오르진 않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으려 한다.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그런 나에게 휴식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사람마다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다르고 난 나의 에너지 총량을 잘 안다. '뭐 그 정도 가지고 지치냐'는 핀잔만큼 무신경한 말도 없다. 꼭 중병을 겪어내야만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나의 쉼을 누군가에게 허락받거나 설득할 이유도 없다. 난 나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으니까.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리면 우선 멈춰야 한다. 힘들면 눈치 보지 말고 나부터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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