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그전에 알 거라는 착각

by 신거니

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는 묘한 맛이 난다. 달콤하면서 씁쓸하다. 언젠가 끝이 날걸 알면서도 그게 언제일 줄은 아무도 모르니까. 항상 닥쳐야만 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아쉬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안긴 채, 그렇게 끝은 찾아온다. 2년을 넘게 다니던 드럼 레슨도 끝이 났다. 집 계약도 끝나가고, 퇴사 날짜도 다가온다. 이사를 갈 예정이라 이 도시에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당연했던 일상이 과거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기포를 뿜으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듯이. 과거는 분명 저기에 있건만 적어도 지금 내 옆에는 없다. 내 곁엔 이제 새로운 일상이 자리한다. 지난날에 파묻혀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날이다. 끝은 그렇게 서서히 다가온다. 수면 위로 고개를 들면 뭐가 보일까? 기대와 걱정이 함께 휘감아 돈다. 이제 안락했던, 하지만 마냥 편하지는 않았던 물에서 나올 시간이다.


회사를 떠날 그날을 상상해본다. 슬플까? 기쁠까? 시원할까? 섭섭할까? 겪어봐야 알 수 있겠지. 남은 사람들과는 어떻게 작별할까? 또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거나 끊을까? 앞으로 무슨 미래가 찾아올까? 회사 밖에서의 나는 뭘까? 어쩌면 그날까지도 답을 알 수 없을 질문만 머릿속을 핑핑 돈다. 인생의 방향키를 처음으로 크게 돌린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키를 놓지 않으려 손에 힘을 줄 뿐이다.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게 있다. 나에겐 여행이 그렇다. 나는 왜 여행을 갈까? 그 고생을 해가면서. 기대만큼 여행지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뜨내기 여행자를 노리는 사기꾼도 많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에게 시달리고 나면 몸과 마음도 지친다. 그러다 한 번씩 마주하게 된다. 내가 여행을 온 이유를.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골목길 틈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이나, 시골마을 뒤편의 들판이 그렇다. 꼬리로 슬쩍 밀고 가는 길고양이나 광장에서 펼쳐지는 버스킹 공연이 그렇다.


그때의 감정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더 부풀어 오른다. 단순한 추억 보정 이상의 무언가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저 아래에서부터 뭔가가 치고 올라온다. 아, 그런 의미였구나.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다시금 여행을 떠날 힘을 얻는다.


회사를 떠나 다시 회사로 돌아올지(이 회사는 아니겠지만), 영영 다른 길로 빠지게 될지는 모르겠다. 앞날은 말 그대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지나서야 보인다. 시간의 불빛은 바로 내 발밑을 비춘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의 기준으로 미래를 판단한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내가 어떨지 알 수 없다. 절벽이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알고 보니 다이빙 포인트일 수 있고, 노란 벽돌 길이라고 믿었는데 날개 달린 원숭이가 도사릴 수도 있다.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자. 불안함은 당연한 감정이지만 계속 끌고 갈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엔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 써놓고 나니 무슨 선문답이 되었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될 줄 나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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