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최근 들어 파이어족이라는 특정한 집단으로 묶였을 뿐, 징조는 곳곳에서 드러나 있었다.
첫째, 더 이상 직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않게 되었다. MZ세대 입장에서 직장이란 독립을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지, 내 삶 전체를 걸만한 대상은 아니다. 평생고용 시대도 끝난 데다 취업 경쟁 자체도 치열해져 인생을 더 이상 책임져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코로나 사태로 자산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며 실물경제는 침체기를 겪었다. 대신 돈의 흐름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자자산 쪽으로 몰리며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반대로 기업은 상황이 어렵다며 임금을 동결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셋째,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며 현재의 나를 더 가열하게 몰아붙인다. 몇 년 전만 해도 현재의 삶을 즐기자는 욜로(YOLO)족이 떠올랐으나, 이제는 반대로 오늘을 희생해 생존 가능한 내일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났다.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살아남아야 한다.
파이어(FIRE)족은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다.
1. 경제적 독립 (Financial Independence)
2. 조기 은퇴 (Retire Early)
즉, 경제적인 독립을 통해 조기 은퇴를 하여 자기가 바라는 인생을 살겠다는 강한 열망을 지닌 단어다. 그래서 파이어족 하면 보통 경제적인 독립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얼마의 종잣돈을 모으면 몇 % 의 수익을 통해 평생 먹고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거나, 적어도 40살 이전에는 완전히 은퇴를 해야 한다는 식의 담론이 대부분이다. 특히 파이어족을 조명하는 언론 등의 미디어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다만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방법론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바로 동기와 독립 이후의 이야기다. 나는 왜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할까? 그리고 독립하고 나서는 어떻게 살아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실행한다면 이런 움직임도 분명 의미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파이어족 담론에는 질문이 결여되어 있다. 마치 옛날 동화책을 보는 기분이다. 인생은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잔인하게도 계속 이어진다.
과거에는 대략 50~60살까지 일하다가 은퇴를 하여 70~80살까지 살았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게 미덕인 시대였고, 집 한 채를 온전히 소유해 노후를 보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은퇴시점이 점점 빨라지며 기존의 성공 공식으로는 삶을 꾸려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평생 연금이 나오는 공무원이 각광을 받고 있고, 한편으로는 창업이나 투자를 통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파이어족 담론은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일지 모른다. 더 길어진 인생을 보다 더 알차게 보내겠다는 욕망, 회사가 내 삶을 책임져주지 않으니 내가 내 손으로 살아가겠다는 간절함. 파이어족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막연하게 경제적인 자유만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빠르게 은퇴하면 삶이 나아질 것처럼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상태에서 빠르게 은퇴하면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파이어족 담론은 이 시점에 갑자기 두 손을 떼어버린다. 마치 대학만 가면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던 어른들이 입학과 동시에 관심을 끊는 것처럼. (물론 졸업 즈음에 다시 등장하여 이번엔 취업이나 결혼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함정이다.)
사실 파이어족 담론 자체가 모든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 모든 담론은 명확한 목표를 갖는다. 그 목표까지만 나를 데려다주면 그만이다. 그 밖의 영역은 상상에 맡기거나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다. 목표의식이 흐려질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소비를 극단으로 줄여 조기 은퇴를 해야 하는데, '은퇴하고 뭐하지'식의 배부른 소리를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문은 거추장스럽다. 수험생한테 '나는 왜 공부하지'라는 질문이 사치인 것처럼.
그런데 이게 맞는 걸까? 다시 말하지만 인생은 동화책이 아니다. 계속 이어진다.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성취하더라도 여전히 다음 목적지가 필요하다. 파이어족 담론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독립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담론 역시 함께 챙겨가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나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고 싶어 한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파이어족 담론은 그 당연한 욕망에 대한 새로운 표현일 뿐이다.
걱정스럽다가도 한편으로는 반갑다. 대안적 삶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주니까. 한국 사회는 유독 정답을 강조한다. 정해진 트랙에 맞춰 각 단계마다 과업을 이뤄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사회적인 압력이 가해진다. 문제는 그 과업이 개인의 희망이 아닌 집단의 요구로 진행된다는 데에 있다. 언제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또 언제가 되면 집을 사야 한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되었고, 집단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대안적인 삶의 모습이 필요하다. 대안적 삶이란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걸 말한다. 모두가 꼭 비혼주의를 외치거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분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선택지를 제공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인생을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꼭 동조하거나 찬성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는 그렇게 살고 있구나 하고.
변화가 빠르고 혼란스러운 시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요즘은 1년 단위로 세상이 바뀐다. '젊은 세대'도 정신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만의 단단한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에는 마음을 열되, 중심을 지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오늘도 해답을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