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보조바퀴를 떼고

이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by 신거니

난 가끔 이별이 반갑다. 나비가 번데기를 벗어던지듯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서. 사람의 인생은 한 번이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죽음과 부활을 반복한다. 과거를 강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미래를 맞이한다. 미래는 또 다른 과거가 되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연결된 고리를 잡고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이리저리 유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변화의 흔적이 내 안에 수없이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그 모든 일의 결과로 지금 내가 서있다.


하지만 여전히 떠나보내기가 두렵다. 익숙해져 버린 나만의 안전지대, 관계, 습관, 지긋지긋한 일상까지도. 도망치는 기분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데,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좋든 싫든 이미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퇴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아버지는 안장 뒤쪽을 단단하게 붙들었다. 보조바퀴도 떼어내고 오로지 어설픈 균형감각으로만 달려 나가야 한다. 넘어질만하면 아버지가 한 번씩 잡아주었지만 결국은 내 힘으로 페달을 밟는다. 수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손길이나 킥판의 도움을 받는다. 물에 닿는 그 서늘한 감각,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공포, 사방에서 반사되어 귀를 때리는 수영장 특유의 소음까지. 겁 많은 아이는 이제 자전거도 수영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나에게 회사는 보조바퀴이자 킥판이다. 처음에는 마음껏 의지한다. 한쪽으로 기울어도 괜찮다. 어차피 보조바퀴가 땅을 단단하게 받쳐주고, 킥판이 내 몸을 다시 물 밖으로 꺼내 줄 테니까. 언제부턴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점이 온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 마음껏 앞으로 달려 나가거나,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욕망은 점점 자라 누를 수 없는 지경인데도 회사가 짜 놓은 틀에 갇혀있다. 이제는 놓아줄 때다.






비틀거린다. 숨을 헐떡이고 허우적거린다. 그러다 나만의 호흡과 자세, 요령을 익힌다. 오롯이 홀로 서는 법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사실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는 익힐 수 없다. 손에 배긴 굳은살만큼, 하나둘씩 늘어가는 상처만큼 조금 더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의 아픔은 말도 못 한다. 일종의 성장통이다. 뼈가 지끈거리는 고통을 겪어내야만 한 뼘 더 자란다. 그렇게 바라던 어른이 되어간다.


이렇게 보면 퇴사는 도망이 아니라 탈출이다. 둘의 차이는 명확한 목적의식에 있다. 도망은 그저 현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목적이지만, 탈출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탈출에는 항상 목적지가 있다. 회사를 탈출했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하고, 감옥에서 탈출했다면 고향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문제가 내부에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난 탈출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해야만 보이는 게 있다. 킥판에서 손을 떼어야 프리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자라기 위해 난 탈출해야 했다. 갑갑한 사무실에 갇혀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답은 바깥에 있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에는 없다. 지난 3년간 찾아 헤맸기에 잘 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충만해지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회사 밖에 존재한다. 이건 명확하다.


그럼 회사 안에서 그 바깥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가능하지만 거추장스럽다. 마치 보조바퀴를 달고 내달리는 자전거와 같다. 조금이라도 기교를 부리면 땅에 긁혀 소음을 낸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음에는 귀를 막을 수도 없다. 계속 무시하면 몸과 마음에 신호가 온다. 갑자기 병이 찾아오고 쉽게 우울해진다. 이제는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나가야 한다. 나가야 보인다. 내 길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지금이라도 나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몸이 계속 묶여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마음으로 비명을 질러도 애써 덮어둬야 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모르긴 몰라도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겠지. 최소한 불행하게 살아갈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난 탈출한다. 도망도 회피도 아닌 오히려 인생을 한번 잘 살아내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그런 선택을 내린 과거의 나에게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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