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사람이 된다는 것

쉽게 대체되지 않으려면

by 신거니

가끔 수많은 사람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건, 그들과는 다를 바가 없으면서 섞이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는 1인칭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스스로를 남들과 다르다고 느낀다. 군중은 일종의 덩어리로 인식된다. 나와는 분리된 하나의 덩어리. 동시에 그 안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 똑같은 말투로 살아가는 나. 유일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달라야 하지만 달라서는 안된다.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K직장인이 흔히 겪는 딜레마다. 요새 친구들은 개성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차다가도, 조금만 특이하면 수군거리는 상사. 창의성과 순종을 동시에 요구하는 조직 문화. '사장님이 허락하신 혁신'만이 받아들여지는 현실. 고개를 쳐들기도, 완전히 숙이기도 어려운 어중간한 자세로 지금 이 순간을 버텨낸다. 나를 마음껏 드러내도 손해보지 않을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사실 퇴사자만큼이나 직장인의 불안감도 상당하다. 직장인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교차로에서 살아간다. 일한 만큼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지만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 비정규직은 언제 정규직이 될지, 정규직은 언제 승진할지 노심초사한다. 회사를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대로 괜찮은지 반문하기도 한다. 사업을 하다 망하는 것보다야 낫지 하면서 위안을 삼다가도, 성공한 이들에게 질투와 동경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 와중에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라느니, 나만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느니, 노동 양극화가 심해진다느니 하는 소리가 미디어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온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딱히 대안도 없다. 한 번도 그렇게 교육받지 못했고, 세상에는 어려운 일 투성이니까. 결국 극도의 안정성을 추구하거나 도박에 가까운 확률에 인생을 건다. 미래가 불안하니 아예 확실한 길을 택한다.






반면 누군가는 극단적인 두 갈래 길 사이에서 방황한다. 평생을 똑같은 일만 하며 사는 것도, 순전히 운에 내 삶을 맡기는 것도 탐탁지 않아서다. 내 삶. 내 삶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특별함과 유일함은 어디에서 올까?


식상한 답변이지만 답은 내면에 있다. 외부세계는 항상 개성에 망치질을 가한다. 규율과 도그마,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개인을 휘두른다. 그래야 그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없이 섞여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은 저마다의 취향, 신념, 가치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세상과 만날 때 대개 그 뾰족함을 감춘다. 혹은 닳아 없어지기도 한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표현을 하지 않을지언정 그 괴리감은 계속 남아있다.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오기도 하고, 갑자기 자아를 찾겠다며 네팔행 비행기표를 끊거나, 쉽게 우울해지기도 한다. 사람은 군중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이면서, 동시에 자의식을 가진 개별적 존재다. 나와 우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아파한다. 사실 한쪽으로만 생각하면 편하다. 집단에 나를 완전히 내맡기거나, 아니면 남들을 무시하고 나를 위해서만 살거나.


두 길 모두 쉽지 않기에 방황이 시작된다. 답은 알고 있다. 유일해져야 하고, 특별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면에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면은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파동과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요동친다. 그리고 그 일련의 흐름을 보고 있자면 개성 혹은 성격이 보인다. 참자아라고 불러도 좋다. 그렇게 나를 형성하고 발견해야 한다.


그냥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가서 생각만 한다고 찾을 수는 없다. 세상은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다. 자아 역시 세상을 비춘다. 내면은 자아와 세상 간의 상호작용이다. 내면은 경험한 만큼 넓어지고 성찰한 만큼 깊어진다. 마치 해저의 바닥처럼 수많은 굴곡이 생기고 그게 개성이 된다. 유일함과 특별함은 여기저기 쏘다니는 탐험가나 깊게 침잠하는 다이버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 넓이와 깊이만큼 그 사람이 다른 이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유일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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