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오는 게 능력이야

자유를 위해 꼭 가져야 할 세 가지

by 신거니

옆팀 과장님과 퇴사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요새는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게 능력이라고.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 '떠나야 할 때'를 선택할 수 있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자유라니. 사실 자유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회사를 나올 수 있지만 아무나 나오는 건 아니다. 대책 없이 탈출 버튼을 눌렀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처음 퇴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그랬다. 요즘 같은 세상에 뭘 믿고 나오냐고. 난 말했다. 난 날 믿는다고. 부모님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난 진지했다. 내가 나도 믿지 못한다면 이 험난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사실 믿는다는 건 그렇다.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그저 만용에 불과하다. 내 선택이 자유로이 세상을 유영하려면 능력에 기반해야 한다.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길이라도 매 순간이 도전이다. 재수를 하러 서울에 올라왔을 때, 연고도 없는 지역에 취업했을 때, 그리고 퇴사를 결심한 지금도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어떻게든 나 자신을 그 안에 던져 넣고 살아남으려 애쓴다.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낸다. 매번 주어지는 과업에도,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일상에도 적응한다. 그것도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나에 대한 믿음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넌 어딜 가도 잘할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응원은 덤이다.






회사를 나오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기 전부터. 그 오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다. 주변에서는 잘 다니다가 '갑자기' 왜 퇴사를 하느냐며 묻는다. 어제도 그랬다. 아니다. 갑자기가 아니다. 퇴사를 향한 결심은 예전에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이제야 목적지에 닿았을 뿐이다. 사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타인은 결과만을 본다. 과정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건 나의 몫이다.


그럼 나는 왜 회사를 나오고 싶어 할까? 자유롭고 싶으니까. 투자 공부를 하고, 디지털 노마드스러운 여러 활동을 하기도 하고, 돈도 차곡차곡 모았다. 회사는 나의 종착역이 아니다. 그저 베이스캠프다. 사실 베이스캠프에서의 삶도 쉽지 않다. 시설도 열악하고 밖에는 찬바람이 분다. 그래도 맨몸으로 풍파를 받아내는 것보다야 낫다.


베이스캠프는 원정의 목적지가 아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이다. 수단에 매몰되어 너무 오래 머무르면 목적을 잊는다. 안온함에 젖어 안주한다. 그런 삶에도 의미가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걸 내팽개치고 바로 뛰쳐나갈 수는 없다. 충분히 정비도 해야 하고 좋은 날씨도 기다려야 한다. 언제 때가 올지는 알 수 없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정상 하나씩을 품고 산다. 누군가는 에베레스트에 올라야 하고, 다른 누군가는 동네 뒷산으로도 충분하다. 꼭 최고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 최고의 자리를 위해선 많은 걸 희생해야 한다. 어쩌면 내 삶 그 자체도 말이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삶을 지키기 위해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럼 회사를 나오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쌓아야 할까? 거꾸로 생각해보자. 나는 왜 회사에 남아있을까? 돈을 주고, 소속감도 주고, 삶의 목적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 즉 다음 세 가지다.


1. 이윤 창출: 내 재능과 흥미가 세상의 필요와 만나서 상업적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2. 인적 네트워크: 내 사람을 모아야 한다.

3. 자아성찰: 나 자신을 알고 목적을 세워 살아가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인생의 가장 큰 화두다. (브런치의 전체 주제를 일, 사랑, 돈, 자아로 잡은 건 우연이 아니다) 회사가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러다 회사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점이 온다. 자산 가격의 폭등으로 월급이 오히려 독이 된다든지, 폐쇄된 커뮤니티에서 같은 사람만 만나거나,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회사가 아니라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문제다.


회사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생각이 든다. 능력이 있다면 뒤돌아서면 그만이다. 그러지 못했고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 가끔은 섬뜩하다.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그저 무기력만 반복하는구나. 반복되는 무기력은 체념과 절망으로 이어진다. 축 늘어져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1. 이윤 창출


이윤 창출이라고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쉽게 동력을 잃는다. '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재능과 흥미를 세상의 필요와 일치시켜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필요로 해도 내가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아무리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이윤은 '나'와 '세상'의 교차점에서 나온다.


자원봉사나 취미활동, 그리고 일은 이 지점에서 구분된다.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고 경제적인 대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과 흥미는 이 전체 과정을 끌고 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내가 정한 타깃이 뭘 필요로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관찰과 공감은 좋은 동반자다. 세상이 가진 필요는 수요로 이어지고 거기에 나만의 틈새가 보인다.



2. 인적 네트워크


흔히 인적 네트워크 하면 사교모임에 나가거나, 명함을 돌리는 이미지가 생각난다. 반쯤은 맞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의 인적 네트워크는 '내 사람'을 모으는 과정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뒤돌아서는 이가 아니라, 나의 이상과 신념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에 끌리는 사람들. 친구라기보다는 팬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사람을 모아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회적 고립은 실제로 수명을 단축시킨다) 모두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 자체로 최고의 경험이다.



3. 자아성찰


자아성찰은 인생을 목적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은 대체로 재미없고 대체로 무의미하다. 행복은 금방 사라지고 슬픔도 무뎌진다. 다만 살아가는 목적이 있다면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안다. 실패해도 좋다. 그 목적지에 뭐가 있든 난 나의 소임을 다했으니까.


사실 나를 안다는 건 모든 일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지이기도 하다. 나에게서 세상으로, 다시 나에게로. 인생의 흐름은 그렇게 이어진다. 내 삶이 의미 있다는 그 한 가지 확신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친다.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 박사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실존적 공허'를 꼽는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의식을 가지고 있고 종교 등 거대담론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현대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에게서 의미를 뽑아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가장 거대한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