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보고 돈을 좇으면 돈이 안된다
한걸음 다가가면 한걸음 멀어지고, 한걸음 물러서면 한걸음 다가오는 그런 존재가 있다. 돈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행복이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 하나. 겉으로 보기에는 달콤해 보이지만 뜯어놓고 보면 이보다 더 씁쓸할 수 없다. 면세점 어딘가에서 적당히 사 온 술이 든 초콜릿 같다. 이는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하나, 때로는 모른 척하고 돌아가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둘, 모든 건 적절한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이 두 사실만 기억해도 인생의 많은 부분이 비교적 수월하게 풀린다. 그 이전에 반드시 뜨겁게 품어본 경험도 있어야 한다. 사랑도 구질구질하게 붙들어봐야 이후에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처럼. 돈도 마찬가지다. 돈은 달콤하다. 때론 중독적이다. 모든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킬 만큼. 관계에서는 놀랍도록 능숙한 이도 돈 앞에서는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게 사람이다. 데어봐야 뜨거운 줄 알고, 찔려봐야 날카로운 줄 안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간다.
최근 퇴사를 하니 자연스레 돈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잠시 이런 생각도 했다. 아차 싶었다. 이런 생각만 하다가 전 회사를 다녔고 많은 상처를 받지 않았나. 의사결정 기준이 돈이 되었을 때 시야는 좁아지고 내가 바라는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일을, 그리고 삶을 다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
물론 당장 돈이 급하다면 어쩔 수 없다.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일말의 여유라도 있다면 찬찬히 돌아볼 일이다. 결국 내가 되지 않으면 그 일을 지속하기란 어려우니까. 좀처럼 흥미도 생기지 않고 실력을 쌓기도 어렵다.
그럼 내가 되는 일이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1. 자율성
2. 성장
3. 기여
내가 되는 일은 스스로 결정해서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커리어 혹은 인간적인 성장을 끌어내야 하고, 타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기여해야 한다.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모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럼 돈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돈(혹은 거기에 준하는 경제적 보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돈은 중요하다. 다만 아까도 살펴봤던 것처럼 돈은 다가갈수록 멀어진다. 의심 많은 고양이를 꾀어내듯 어느 정도 무심해져야 한다. 참치캔을 따 놓고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살금살금 다가온다.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실 돈은 일의 부산물에 가깝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벌지 않으면 일을 지속할 수 없으니까. 이런 발상의 전환은 행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한 거다. 실제로 뇌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 행복이라는 신호를 이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더욱 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형태를 고민하게 된다.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거니까. 그 일 자체가 최소한 즐겁지라도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돈을 위해서만 일을 하면 (물론 그래야 하는 시기가 있지만) 괴로운 감정이 밀려들어온다. 죽지 못해 사는 인생처럼. 나에게 내리기엔 너무 잔인한 형벌이다.
내가 되는 일의 세 가지 요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영향력'이다. 영향력이 높으면 물론 그만한 책임과 부담을 지겠지만 일의 만족도는 높다. 반면 아무리 업무가 편하고 보상이 높아도 아무런 영향력 없이 휘둘리기만 한다면 만족도가 낮아진다. 전 회사가 그랬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업무도 없었거니와 자신의 성장이든 사회든 기여하는 바가 적었다. 손발이 묶인 채 바깥만 바라봐야 하는 온실이랄까? 회사를 나온 지금 그 온실의 소중함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
영향력이 생기면 경제적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어떤 분야든 유의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방에서 기회가 날아온다. 이르기 쉽지 않은 경지겠지만 충분히 추구할 만하다. 나에게 맞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돈까지 벌 수 있다니. 가장 이상적인 일의 형태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