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안돼?
질문이다. 질문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시간차를 두고 아주 맹렬하게. 퇴사한다는 그 한마디가 발단이다. 인간관계도 그리 넓지 않건만 내게 이렇게도 관심이 많았다니. 고마운 일이다.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면 듣지 않았을 말이니까. 이젠 준비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알맞은 대답을. 이 마음을 표현할 조금 더 정확한 대사를.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행동에 내가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면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 저마다의 인생 속에서 저마다의 선택을 내린다. 그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사실 무섭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게 한편으로는 그렇게 편한가 보다.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으니까.
퇴사는 그 짐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겠다는 선언이다. 당차지만 그만큼 걱정 어린 시선을 받는다. 그 시선은 나의 안팎에 끈질기게 자리한다. 왕이 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왕은커녕 이제 갓 노비 딱지를 떼는 건데 조금 버겁다. 그래서 나만의 방패를 집어 든다.
나 쉬려고.
단순 명료하다. 쉬겠다는 사람을 붙들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사업을 하겠다, 다른 회사로 가겠다,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면? 당장 잔소리가 날아온다. 듣고 나면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현실에 안주하고픈 마음이 찾아온다. 사실 당연한 감정이다. 변화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이 끓으려면 엄청난 열이 가해져야 하는 것처럼. 차라리 지금의 괴로움을 견디자. 이렇게 타협하기도 한다.
난 차라리 주저앉으련다.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한 회사다. 취준생에서 바로 직장인이 되었다. 뭣도 모르고 달려 나갔다. 매달 받는 월급과, 칼퇴와, 동기들과의 뒷담화로 괴로움을 조금씩 눌렀다. 하지만 그조차도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내 안에 모순이 하나둘씩 쌓여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퇴사를 결심한다. 난 그랬다.
얼마 전 친구와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 왈, 쉴 거면 나오고 다른 일을 할 거면 조금 더 다니란다. 보통은 반대로 말하지 않나. 그러자 친구가 그런다. 쉼에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지만, 다른 일에는 조금 더 모멘텀이 있어야 하니까. 힘들면 너부터 챙겨.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사실 그렇다. 힘드니까 쉬는 거다. 그저 그뿐이다.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 거창한 청사진 따위 없어도 되는 거구나. 조금 앉아서 쉬어가도 되는 거구나. 친한 동생도 말한다. 몇 달 쉰다고 안 죽는다고. 쉬어도 괜찮다고. 그 말에 마음이 동하는 건 그만큼 힘들어서겠지. 나도 돌보지 못한 나 자신을 네가 돌봐주는구나. 고맙다 야.
뜨거운 여름날, 농부는 절대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낮에는 잠을 청한다. 해가 떨어지고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저녁, 연장을 챙겨 집을 나선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일에 매몰되면 내가 쓰러진다는 그 단순한 진실을 알아서다.
조금 쉰다고 인생이 망가지진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쉬지 못하면 무너져버린다. 삶을 끌어가던 동력에 내가 오히려 끌려간다. 일에도, 공부에도, 심지어 관계에도 쉼이 필요하다. 쉼이란 적정한 거리를 두는 행위다. 손에 들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본다. 단순히 누워서 낮잠을 자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삶을 다시 안고 갈 힘을 얻는다.
일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그게 내가 일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몰입하면서도 중독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는다. 일과 일 사이에 쉼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