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에 지친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 유형 두 가지.
1. 무책임하게 위로만 건네는 힐링 에세이(의 탈을 쓴 캐릭터 굿즈)
2.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다그치는 자기 계발서(스러운 협박장)
첫 번째 유형이 맹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느낌이라면, 두 번째 유형은 펴자마자 거부감이 든다. 그들은 대개 자신을 성공한 사업가, 이 시대의 진정한 비즈니스 멘토, 수많은 팔로워가 인정한 구루라고 부른다. 자신이 자산가임을 방증하듯 비싼 정장을 입거나, 아니면 실리콘밸리의 CEO 스럽게 싸구려 티셔츠를 걸치고 사진을 찍는다.
이들은 대뜸 협박을 한다. 당신은 지금 뒤처지고 있고, 시대는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자신은 세상의 흐름을 읽어 몇 번의 실패 끝에 큰 부를 일구었고 그 방법을 이 책에 자세히 적어두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어쩐지 기분이 안 좋은 건 둘째치고 그 묘책이 나에게도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다.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은가?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 그 사람은 또 다른 책을 낼 것이다. 이제 그 책을 살 타이밍이다.
자기 계발 분야는 경영학의 개념을 사람에게 적용한 결과물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비즈니스 기법으로 인생을 경영해야 한다는 마인드다. 경영학은 여러 기초학문의 개념을 모아 자본주의로 포장한 상품에 가깝다. 학문으로서의 깊이는 얕지만 타 학문과의 호환성이 좋다. 예술과 경영을 합치면 예술경영, 기술과 경영을 합치면 기술경영이 된다. 학부시절 경영학을 전공한 후 내린 결론이다.
'그럼 인생과 경영을 합치면 안 될까?'라는 물음에서 탄생한 게 바로 인생경영, 다른 말로 자기 계발이다. 사실 자기 계발의 모티프 자체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주로 철학이나 종교, 교육학 등이 그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자기 계발이라는 세련된(?) 기업가가 나타나 각 학문의 장점을 고루 흡수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으니 심리테스트 문항을 넣고, 수도사들이 했던 감사 기도를 매일 저녁 다이어리에 적는다. 그리고 수많은 사례를 들며 (자신을 포함해) 이런 행동의 기대효과를 증명한다.
자기 계발서의 목표는 대개 성공이다. 대놓고 돈이라는 책도 있고, 나다운 인생이나 행복한 인생처럼 조금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전개 방식 자체도 마케팅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마치 광고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이 책을 사서 열심히 읽고 실천하면 나도 저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최근의 '갓생', '미라클 모닝', '파이어족' 등의 키워드와 엮이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사실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막연한 불안함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따른다면 자기 계발서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나만의 것'이 생기지 않는다. 자기 계발서는 중독적이다. 동기부여 영상의 중독성은 더 심하다. 마치 나도 저들처럼 탄탄대로를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술에 만취하면 세상 근심이 사라지듯이 말이다.
진짜 문제는 술에서 깨면 시작된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고, 심하면 구토를 한다. 알코올은 일종의 독소다. 그 독소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숙취가 일어난다. 소위 '현타'가 세게 오는 순간이다. 다시 술을 마시면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하면서 헛구역질을 한다.
중독은 마음의 공허감을 채우기 위한 끊임없는 갈망에서 나온다. 중독의 대상은 항상 자극적이다. 술이든 담배든 마약이든 그리고 자기 계발 콘텐츠든. 이걸 손에서 놓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더 매달리게 된다. 중독의 대상을 추구하는 동안은 충만하다. 하지만 그 충만함은 순간에 머문다. 자극은 더 커져야 하고, 그동안 내 삶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난 쉽사리 누군가의 말을 믿거나 따르지 않기로 했다. 수많은 명언 모음집이나 동기부여 문구가 오히려 내 삶을 해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사실 자기 계발서 자체에는 죄가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잘 활용하면 인생에 보탬이 될 수 있다. 다만 자기 계발 콘텐츠는 너무나도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래서 더 의심스럽다.
퇴사를 하면 당장의 방향성이 없으니 저런 콘텐츠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때다 싶었는지 당장 사업을 시작하라는 영상을 마구 노출시킨다. 무슨 마케팅으로 한 달에 누워서 천만 원을 벌었다는 사람,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에 건물주가 된 사람이 등장한다. 저들의 방법론이 계속 유효했다면 굳이 유튜브 영상을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부동산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은 '부동산으로 노후 대비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라는 케케묵은 농담이 생각난다.
이렇다 보니 흔히 말하는 '사짜'를 걸러낼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첫째, 한 달만에 몇천만 원 혹은 몇 년 내에 자산 백억 하는 식으로 말도 안 되게 큰 액수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른다. 수치는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이지만 돈을 미끼로 누군가를 꾀어내려는 건 얕은 수로밖에 안 보인다. 무책임하게 일단 지르고 보는 거다.
둘째, 단기간에 별 노력 없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사람은 거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공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것도 꽤 긴 시간이. 물론 본인은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손에 쥐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이 상당 부분 운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 '성공 방정식'이 그대로 먹힐 확률은 거의 없다.
셋째, 인생이 망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거른다. 공포심은 가장 즉각적인 동기 요인이다.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든지 재빠르게 행동한다. 그런 원초적인 본능에 호소하는 사람이라니. 정교함이 부족하다.
넷째, 더 자세한 내용은 자기가 집필한 책이나 유료 강의, 1:1 컨설팅(당연히 유료) 등에서 다룬다고 하는 사람은 거른다. 개인 맞춤형 조언을 할 때는 필요할지 몰라도, 괜히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믿음이 가질 않는다. 또 대개 그런 서비스를 이용해봐야 무료 콘텐츠와 질적인 측면에서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다섯째, 자신의 한계, 실수, 오류, 주장에 대한 반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거른다. 그 누구도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적당한 PR과 마케팅의 마사지를 받으면? 이 시대의 진정한 멘토가 탄생한다. 저 수많은 추종자를 보라. 저 사람들이 전부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틀릴 수 있겠는가? 아테네 최고의 현자인 소크라테스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했다. 자신감은 좋지만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인생의 조언을 구한다면 딱 두 마디만 하련다.
나답게 살고, 아무도 '그냥' 믿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