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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22. 2022

[6]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했다

2022.1.22 성장로그

'으른'의 상징하면 역시 술과 운전이 아닐까 싶다. 호기심 반 동경 반으로 얼른 어른이 되길 기다린다. 그리고 알게 된다. 술과 운전에는 해방감과 동시에 책임감이 찾아온다는 것을. 술을 잘못 마시면 내 몸에도, 주변에도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운전은 더하다.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간 누군가의 인생이 끝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 아닌가. (이 둘을 합친 음주운전은 오죽할까)


언제든 마실 수 있는 술과는 달리 운전에는 자격증과 자동차가 필요하다. 세상 살기 역시나 쉽지 않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친구와 운전면허학원으로 달려가 면허를 따기로 했다. 다행히 필기, 실기, 도로주행까지 한 번에 붙었다. 학원비가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지만 그나마 돈이 굳었다.


면허가 있다고 바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에야 각종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당시엔 렌트카를 빌리거나 혹은 자기 차를 몰아야 한다. 하루하루 살기 팍팍한 대학생에게 무슨 차가 있겠는가. 부모님 차로 한두 번 연습을 하긴 했지만 내 차는 꿈도 못 꾼다. 게다가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어서 사실 자가용이 필요없다.


그렇게 면허증을 한 번 갱신하고 나서야 운전을 할 기회가 생겼다. 부모님이 차 한 대를 더 사면서 기존에 쓰던 승용차 하나가 남게 되었다. 주행거리로만 치면 지구를 몇 바퀴 돌다 온 녀석이다. 아직까지 잘 굴러가는 게 용하다. 차량 양 옆과 앞뒤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덕분에 어디 한 군데 긁혀도 티가 안 난다는 장점은 있다.


완전히 넘겨받으면 차량 보험료까지 떠안게 되니 새로 이사한 집에다 세워두고 공용차로 쓰기로 했다. 사실 평소에는 딱히 타고 다닐 일이 없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고 지하철을 통하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현재 다니는 직장도 버스로 10분 거리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으니 그냥 뚜벅이로 살고 있다.


그러다 운전을 할 기회가 생겼다. 주말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 차로 가면 30분 정도 거리다. 중간에 고속도로도 타야 하고 운전 연습하기도 좋아 보인다. 요전에 아버지를 태우고 다녀온 곳이기도 해서 호기롭게 차키를 집었다. (그리고 가족이랑은 운전 연습하는 거 아니다. 정말)


누군가를 태우고 달려도 긴장이 되지만 혼자 운전대를 잡으면 긴장감은 배가 된다. 옆에서 경고해줄 사람도, 봐줄 사람도 없으니 내가 모든 걸 챙겨야 한다. 주변을 돌며 연습을 해두긴 했지만 어쨌든 실전은 실전이다. 어찌어찌 잘 다녀와서 주차까지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나, 살아남았구나.






운전자와 동승자의 마음가짐은 정말 다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사이드 미러, 백미러, 전방, 계기판도 봐야 하고 동승자의 컨디션도 돌봐야 한다. 추우면 히터도 틀고 더우면 창문도 열고 음악도 틀어야 한다. 평소엔 순하디 순한 사람도 왜 운전대만 잡으면 다른 인간으로 변하는지 알 것 같다.


어른이 되어야 운전을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운전을 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사실 술을 마실 때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기껏해야 자신만의 술 취향을 발견하고, 주량을 알아가고, 주변 사람을 좀 더 챙기는 정도다. 운전은 차원이 다르다. 시야를 더 넓게 가져야 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챙겨야 하고,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무뎌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중압감이 남는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동안 날 태우고 다녔던 이들에게 새삼 감사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감정 소모를 하며 다닌 게 아니겠는가. 하다못해 버스 기사분들에게 인사라도 반갑게 건네자고 다짐해본다.


또 운전을 하다 보면 고려할 것도 많아진다. 우선 주차가 되는지 따지게 되고,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날씨는 어떤지, 동선은 어떻게 짜야할지 고민이 된다. 차를 몰다보면 당장 유류비, 보험료, 각종 수리 및 정비 비용, 톨비, 주차비, 하다못해 발렛 파킹 비용이 든다. 자동차가 내 지갑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돈이 있어야 차를 사지만, 그 차를 유지하려고 해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동시에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사람들이 괜히 그 비싼 돈을 들여 차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니다. 예전 같으면 몇 번씩 버스를 갈아타야 했던 곳으로 한번에 간다 . 음악을 틀고 드라이빙을 하다 보면 뭔가 모를 해방감도 맞이한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한적한 곳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그 순간을 한껏 만끽하고 싶다.


완전 자율주행 차량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운전을 즐기고 있다. 말을 탔던 옛날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때보다 훨씬 발전한 쇳덩어리를 몰고 다니며 괜히 어른이 된 기분을 느낀다.






사실 기술이라는 게 그렇다. 뭔가를 할 줄 알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드럼을 치다 보니 노래에서 드럼 비트가 들린다. 요리를 할 줄 알면 어디 가서든 밥은 먹고 다닐 수 있다. 디자인 프로그램을 공부하면 나를 표현할 하나의 창구가 열린다. 기술은 사실 자유롭기 위해 존재한다. 운전을 하면 이동의 자유가 생기듯이.


그래서 도무지 배움과 경험을 멈출 수가 없다.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사람은 삶에 기대가 없을 때 늙어간다. 그거 해봐야 별거 없다는 태도로는 인생을 진득하게 누릴 수 없다. 특히 여행을 가면 이런 유형이 많다. 대만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 겸 운전기사님이 들려준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폭포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별거 없네'라며 빈정댔다고 한다.


그에겐 더 이상 새로움이란 없으리라.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시 가더라도 '예전이랑 똑같네 뭐'라고 할 테니까. 새로움이 없으면 사람의 관심은 과거에 머문다. 소위 꼰대가 라떼 한 잔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걸 기대가 없으니 그나마 뭐라도 있었던 과거에 매몰된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


요즘 퇴사를 하고 매일이 새롭다. 한동안 묵혀놨던 디자인 프로그램도 꺼내보고, 글도 매일 한편씩 쓰고 있다. 조만간 출판도 예정되어 있고 고속도로에서 달려보기도 한다. 내일은 클라이밍을 갈 예정이다. 오늘 만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한다. 얼굴이 참 좋아 보인다고. 나야 내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으니 그 말이 맞겠지. 물론 힘들 때도 지겨울 때도 있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그게 단순히 퇴사 때문만은 아니리라. 뭔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정. 그 감정이 날 살아있게 만든다. 그걸 성장이라고 부른다면 난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 주차도 운전도 능숙한 어른이 되는 그날까지. 안전 운전해야겠다. 아, 그리고 오늘 내 양옆과 앞뒤로 있던 차주분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 모두는 한때 다 초보였으니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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