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진료실 문이 닫히고 잠금쇠가 걸리는 순간.
공기는 뚝하고 꺾인 듯 무거워졌다.
마치 거대한 덫이 닫히는 소리 같았다.
문틈 사이로 스며들던
복도의 남은 빛은 잘려나가고,
방 안에는 형광등 한 줄기가
모기처럼 윙윙거리며 떨고 있었다.
빛은 미세하고 불안정하게 깜빡이며
서연의 얼굴을 이따금씩
음영 속에 가두는 것 같았다.
반 걸음도 더 들어서지 못한 채,
서연은 문 앞에 서 있었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려 할수록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
무릎이 굳고 발바닥이 땅에 붙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심장은 고막 옆에서 뛰듯 요동쳤다.
발끝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여긴 더 이상 진료실이 아니라,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덫 같았다.
‘덫…’
그 단어가 떠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 병원 문을 들어설 때마다,
서연은 매번 그 단어가 떠올랐다.
태준은 환자를 불러 앉히듯,
손가락으로 의자 옆자리를 두어번 툭툭 두드렸다.
“앉아. 진료 좀 보자.”
덫을 장악한 자의 명령.
서연은 의자 모서리에 겨우 엉덩이를 얹고서
무릎 위에 양손을 포개놓고 마른침을 삼켰다.
초조한 손가락이 서로를 꼭 붙들고 있다.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손등은 파르르 떨렸고,
검지 손톱은 엄지 살을 파고들 만큼 꽉 조여 있었다.
"호흡부터."
태준의 시선이 곧장 서연의 가슴께로 내려왔다.
차갑고 건조한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 숨은 비릿한 기운이 선명했다.
의사의 가면 뒤로 새어 나오는 탐욕,
사냥꾼 총구에서 느껴지는 날이 선 욕망.
태준은 서연에게 가까이 다가간 채
청진기를 꺼내 들었다.
소름끼쳐서 눈을 질끈 감자,
가까워진 태준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서연은 차갑게 스며드는 기운을 느끼며
온몸이 대나무처럼 뻣뻣해졌다.
마치 알코올 솜이 닿을 때와 같은
싸늘한 감각이 옷 안으로 서서히 번졌다.
"긴장하지 마, 이건 진료니까."
호흡 크게 해 봐."
시선도 움직이지 않은 채 태준은 명령했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갑게 식은 청진기가 가슴 언저리에 닿았다.
금속은 마치 벽돌처럼 무겁게 누르며
오래도록 한 자리에만 머물렀다.
숨이 오르내릴 때마다
청진기는 조금씩 더 깊숙이 파고드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준의 다른 손이 티셔츠 안쪽을 비집고 들어와
등 뒤 브래지어 끈에 닿았다.
움찔한 서연이 옷깃을 움켜쥐고 허리를 세웠다.
그러자 태준이 한 발 먼저 말을 던졌다.
“숨 쉴 때 통증은?”
“없어요....”
“없으면 됐지.”
태준이 결론을 내린듯 말하자,
청진기가 서연 몸을 빠져나왔다.
그 비릿한 느낌은 차갑게 남아
서연의 살결에 달라붙어있는 것 같았다.
"요즘, 잠은 잘 자고?"
태준이 비릿하게 웃으며 물었다.
"… 덕분에요."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나 없으면 네가 어떻게 잠을 자겠어, 안 그래?"
말끝에 걸린 웃음은 조롱이었다.
서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조차 죄처럼 느껴졌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린 서연.
그녀에게 과도하게 처방된 약.
졸피뎀, 알프라졸람. 서연이 밤마다 삼키던 이름.
약봉지에 새겨진 검은 글자는
독처럼 번들거리며 서연의 숨통을 조여왔다.
“약을 끊으면 어떻게 될까?”
태준은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비틀며 속삭였다.
그말은 협박이면서 동시에 희열을 담은 놀이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겨우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자신도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태준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태연하게 말했다.
“답답하니까 본론부터 말할게.
오늘 내 측근을 통해 들은 소식인데,
보건복지부 감사가 곧 시작된다더군.”
"그게 저랑 뭔..."
서연이 겨우 묻자
태준은 물음표도 없이 곧장 대답했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내가 약물 처방에 아주 관대하잖아?
잠 못 자는 인간들 편하게 재워주고
공부한다는 애들 집중력 끌어올려주고
애새끼 같은 인간들 차분하게 만들어줬는데
다들 그렇게 원해서 해주는 건데 말이야.
아, 글쎄, 우리 병원 이름이 오르내린다네?
과도한 약물 처방이 문제라나 뭐라나..."
웃기지도 않게 말이야.
당신 남편, 보건복지부 사무관이라며?"
"아니... 그건"
서연이 조심스레 답하자,
태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꺾었다.
"진짜 감이 없는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당신 남편이 보건복지부 사무관이고
보건복지부에서 우리 병원 감사를 나온다.
누가 봐도 뻔하잖아, 안 그래?
당신 남편이 거기 있고,
감사는 곧 들어오고.
감사 대상 목록이든, 조사 항목이든,
일정이든 뭐든 미리 알면 좋잖아.
정확하게는 내일까지. 아니, 내일모레까지."
"그건… 불가능해요"
"불가능?" 태준이 짧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큭큭, 재밌네 재밌어. 이봐,
이 동네에서 나한테 불가능은 없어.
앞으로도 없을거고.
그런 말은 내게 통하지 않아.”
서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왜... 하필 저예요?”
“조용하고 티가 안나잖아.”
태준의 대답은 단단하고 얇았다.
“화려한 사람들은 그림자가 크고,
큰 그림자는 금방 들통이 나버리는 법이지."
태준은 몸을 약간 숙여 서연의 눈을 똑바로 잡았다.
“이 동네 아줌마들,
어떻게든 나랑 엮여 보려고 난리인데,
학원 문제, 아이 학교 문제, 남편 출세 문제…
지금 당장 전화해도 이 앞에 줄 서 있을걸?”
"당신, 운이 좋은 줄 알아야 돼.
내가 직접 픽한 사람은 당신 뿐이니까.
한태준한테 선택받았다, 이 말씀이야.
뭔지 알아듣겠어?
어디서 건방지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태준은 서연을 비웃듯 말을 이어갔다.
"당신 남편이 이걸 알게 되면 뭐라 그럴라나?
약에 중독된 불쌍한 우리 와이프. 이럴라나?
더군다나, 그 약을 처방해 준 병원이 우리 병원이네?
재밌잖아, 안 그래?
그리고 말이야. 그날 밤."
그날 밤이라는 말에 서연이 움찔했다.
태준은 그 반응을 즐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그때 나 아니었으면 당신 이 세상 사람 아니야.
이 한태준이가 직접 덮어줬잖아.
응급기록도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소문이라도 나봐, 어휴...
이 동네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잘 알지?
태준의 목소리는 날이 선 칼처럼 차가웠다.
서연은 그 칼끝이 자신의 목덜미를 긋는 듯한 착각에
온몸이 오싹하게 떨려왔다.
“그리고 딸 생각도 해야지. 이 동네 학군 좋아서
남들은 여기 못와서 난리인데,
소문 한 번 잘못 돌면 어떡하려고?
좋은 학군에서 대학 보내려면,
나한테 최선을 다해 잘해야지, 큭큭큭…
안 그래?”
태준의 얼굴 위로
흔들리는 조명등의 그림자가 번들거렸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 사이 주름을 폈다 접었다할 뿐
태준의 권력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가끔은 까먹는 것 같아서…
이 동네에서 창창한 당신 앞길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녀의 소중한 모든걸 불태우고,
모든 꿈을 잘라내는 권력의 그림자.
서연은 그 그림자 아래 완전히 갇힌 듯했다.
서연은 자신이 왜 ‘사냥감’이 되었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조용한 성격, 티 나지 않는 생활,
무엇보다 남편의 직업.
태준은 그녀의 약점을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서연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새벽 독서실 히터에서 나오던
미지근하고 텁텁한 바람.
종이 넘기는 마찰음.
볼펜 잉크의 기름 냄새.
"교생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얘들아, 반가워."
생기 넘치고 발랄한 아이들의 인사소리.
늘 밝은 웃음으로 맞이한 서연.
교실 안을 비추던 햇빛,
조회 시간의 아이들 입김,
분주하게 오고가는 아이들 목소리.
서연은 사범학과를 졸업했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예비선생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리던 삶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꿈은 꺾였다.
남편의 한마디가 모든 걸 지워버렸다.
“애들이랑 살림이나 잘 봐.”
그 후로 서연의 삶은
주부의 일상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학군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아이를 키우며 버텨내는 날들.
남편의 봉급은 늘 빠듯했고,
마트 계산대 앞에서는 장바구니 속
우유 한 팩을 내려놓으며
‘조금만 더 아끼면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곤 했다.
그러나 그건 버팀이 아니었다.
매일, 아주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일이었다.
통장의 마이너스 잔고가 늘어날 때마다
서연은 매일, 자신이 품었던 꿈의 조각을
하나씩 꺾어내 버려야 했다.
그렇게 찾아온 건 산후 우울증.
칠흑 같은 밤마다 덮쳐온 불면증.
서연이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태준은 분명 구원자였다.
아이처럼 맥없이 웃으며 서연은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건넸다.
태준이 내민 작은 약봉지는
밤의 결핍을 메워주는 마법열쇠 같았다.
하지만 그 열쇠는 시간이 지나
빠져나갈 수 없는 덫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난달에는 500만 원, 그 전에는 600만 원.
남몰래 태준의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남편의 봉급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가 봉투에 담겨 건네졌다.
서연은 봉투를 손에 쥘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것만 있으면 이번 달은 숨통이 트인다.
아이의 학원을 끊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께 작은 용돈도 보낼 수 있다.
꿈만같던 적금 계좌도 다시 살릴 수 있다.
그 돈은 통장 마이너스 부호를 지우는 지우개였고
지우개 가루는 보이지 않게
서연의 폐 속으로 서서히 쌓여 갔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섭도록 비열했다.
태준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보만 주면 되잖아,
내가당신한테 늘 두둑한 보상을 해왔잖아.
나 입만 싹 닫는 그런사람 아니야."
태준은 책상 밑 서랍장에서
두둑한 봉투를 꺼내 서연에게 밀었다.
“이건 수고비.
남편 외벌이 박봉으로 버티기 힘들거 알아.
주저하지 말고 받아.
아이 학교 문제, 집세, 생활비…
뭐 하나 쉬운 게 있나?
누구보다 내가 잘 알거든.”
태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연의 표정을 살폈다.
서연은 고개를 숙였다. 또 흔들렸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게 더 독하고 썼다.
너무나 달콤해서 숨을 옥죄며
서서히 중독되어 벗어날 수 없는 독.
서연은 문득,
이런저런 생각과 장면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될 줄 알았지.
아이를 위해 뭐든 버티자고 다짐했지.
그래서... 오늘도 살아남아야 해.
임용고시 접수창구의 투명한 바구니.
접수증 위로 내려앉던 겨울 햇빛.
꺄르륵 웃던 아이들 웃음소리.
여기까지 어떻게 밀려온 걸까.
‘선생님’에서 ‘사냥감’으로.
언제, 내 삶의 이름표를 바꿔 달았을까.
결혼, 육아, 신도시 이사?
모든게 꼬인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난 왜 아직도 버리지 못한채
어떤 미련으로 이렇게 바보같이,
또 고민하고 주저하는 걸까?
서연은 살아남는 것이
이렇게까지 더럽고 치사하고
굴욕적이고 적막할지는 몰랐다.
태준이 낮게 웃었다.
“결국 다들 이렇게 돼, 표정 펴.”
그때였다.
저 멀리 로비에서 인기척이 스쳤다.
‘지잉’ 하고 자동문 센서가 열리는 소리.
단단한 타일을 두드리는 신발 소리.
서연은 숨을 죽였다.
서연의 심장이 요동쳤다.
숨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태준도 긴장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귀를 가져갔다.
발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진료실 안 침묵이 진공관처럼
적막하고 먹먹해졌다.
바로 그 때.
진료실 손잡이가 철거덩 다시 움직였다.
잘 열리지 않자, 이번에는 더 확실하게 움직였다.
'딸깍!'
문이 열렸다. 문틀 안쪽으로,
그림자가 길게 흘렀다. 누군가 들어왔다.
이 소설은 세종 신도시라는 공간을 모티프로 했으나, 실제 지역·인물·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작품 속 모든 설정은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허구입니다. 유사성은 우연일 뿐,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