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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Aug 28. 2019

맥주 두 캔

포스트 포테이토를 곁들이며

난 두 아들을 둔 아빠다.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어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기다리는 시간이다. 미니 특공대를 좋아하는 첫째가 연신 총도 아니고 뱃지도 아닌 것처럼 생겨먹은 특공대 장난감을 가지고 열심히 나를 졸라댄다. 사실 소파에 잠깐 몸을 실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더군다나 오늘같이 골치 아픈 회사일로 야근을 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젯거리를 머릿속에 지끈히 싸매고 온 날은 더더욱 강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난 아빠다. 막중한 책임감과 더불어 육아의 의무를 진 부모다. 싱크대에 그릇을 닦고 있는 아내의 뾰족한 눈초리를 지켜보고 있자면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무엇이라도 가정을 위한 행위를 하던지 시늉을 해야 한다. TV를 끄고 매트리스를 핀다던지 아이들의 옷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놓는다던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뒤통수가 열심히 뜨거워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아이들을 씻기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의 몸을 씻고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말리며 시계를 보면 어느덧 12시가 넘어있다. 재수가 좋은 날은 아이들이 10:30분경에 잠들어 오롯이 나의 시간을 2시간가량 즐길 수 있다.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다. 다른 만사는 제쳐두고 내일 출근길 준비를 위해 잠자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다 보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활자를 읽어낸다. 간혹 낄낄대며 재밌는 글에 혼자 웃기도 하고 네이버 경제 M 콘텐츠를 읽으며 심각하게 나의 경제적 상태와 마인드에 대해 상시로 점검하기도 한다. 일련의 이런 행위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기에 자의적으로 꾸준히 반복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문득, 유튜브를 켰다. 조용하게 템포가 적당한 음악이 듣고 싶었다. 나의 뇌가 가사를 듣고 이해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수 있는 팝송이 적절했다. 의미도 모른 채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맥주 한 캔을 딸칵하고 방금 따버렸다.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면 혈관 속으로 스멀스멀 알코올이 퍼지기 시작한다. 포스트 포테이토 과자 쪼가리를 입에 물고 “크” 하고 소리를 내어본다. 완전한 자유, 스스로 집중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나만의 시간. 난 그 시간의 소중함을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후회한다거나 현재의 삶에 불만족한다거나 가정 불화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열심히 지금을 위하여 청춘을 바쳐온 내 인생에 자유가 사라지고 나 자신에게 더 이상 개인적 시간을 할당해줄 수 없는 비통함에 가끔 한숨을 내쉴 뿐이다. 난 여전히 행복하고 두 아들의 자는 모습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그 자연스러운 미소 말이다.


오늘은 맥주 한 캔을 더 깠다. 그냥 한 캔만 먹고 일찍 잠들려 했는데 한풀 더위가 꺾인 밤바람이 시원했으며 듣고 있는 음악 덕분에 감성이 매우 충만해졌다. 더군다나 나도 모르게 음주 에세이를 시작해버렸다. 맥주 두 캔은 온전한 나의 자유를 입증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증표다.


두 캔에 벌써 취한다.

“크”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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