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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Sep 23. 2019

글도 늙는다

반성하는 아재 일기

장마철 습습한 바람이 창문 너머로 스며들어온다. 올해도 3개월 남짓 남기고 애써 못다 이룬 목록들을 고이 피며 종잇장만 한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서늘해진 스산한 기운은 독백하기에 아주 적격이다. 한적한 공기가 떠다니는 서늘한 공간에 서서 거울 앞 주름이 깊어진 내 모습을 보고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 증거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해봤다. 특별함이 없는 무지의 삶, 지금의 내 모습.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서서히 나는 늙어가고 있다.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두터운 뱃살에 지루함과 게으름을 가득히 실은 채 마치 덕망처럼 붙들어 매고 살고 있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총각의 흔적들이 아쉬울 뿐이다. 나는 나대로 변화하고 있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와이프의 그 한 마디 때문이었다.


"연애하는 저 풋풋함이 너무 부러워. 언제일지 모를 정도로 우린 많이 변한 것 같아."


며칠 전 무심코 와이프가 '연애의 맛'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내게 한 마디 했다. 아릿한 죄책감이 들었다. 무엇이 그녀를 행복하지 않게 했을까? 지금의 나는 나의 하나뿐인 아내를 위해 과연 무엇을 했나? 나와 함께 맞은 세월에 그녀가 나도 모르게 느낀 서러움들. 동년배 친구들이 힘껏 누리고 있을 아가씨의 권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생하게 풍기던 그 비릿한 싱그러움. 그녀의 모든 걸 빼앗아간 것은 오로지 나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도록 했다. 현재의 처사를 비난하지 않는 선에서 미안함을 가득 숨긴 채 툭툭 말을 내뱉었다.


"연애는 우리도 했었지, 지금은 결혼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 우리한테는 승유도 있고 도준이도 있고..."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아빠의 삶으로써 애써 변명하고 있다. 그녀는 엄마의 삶으로써 더욱 힘들었을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그렇게 미움받을 말들을 내뱉고 말았다.  더 이상 특별함도 없이 색 바랜 갱지처럼 써도 되고 안 써도 그만인 평범한 하루를 보는 것.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11시가 넘어서 그저 TV 프로그램을 보는 낙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소소함과 바쁜 나날 속에서도 정녕 그녀에게 그 이상을 나는 줄 수 없었을까? 여전히 현재의 삶이 모순되지 않도록 적당히 미화시켜 한 대답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난 철저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가득히 미안함이 출렁이고 있다. 궁색하게도 합리적인 변명거리를 주섬 주섬 주머니 속에서 만져댈 뿐이다. 경제적 자유가 선물한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수도 없이 세뇌도 시켰으며 두 아들이 자라면 우리가 가꾸고 이뤄나갈 먼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는 다소 허황된 꿈만 제시할 뿐이다. 아내가 바랬던 것들은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내가 지금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서 성급히 생각해 낸 작은 보상들 뿐. 마음이 아팠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현재로써의 장점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내를 힘들게 한 것은 지금의 삶은 아닐 것이다. 아재처럼 배 나온 나의 외적 모양새와 풋풋함과 싱그러움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늙어버린 나의 감성과 덕분에 늙어버린 글 때문이겠다. 그저 그런 30대의 중반을 살아가는 회사원이자 두 아들의 아빠의 모습. 그리고 노력하지도 개선할 의욕도 없는 현재의 내 모습들 모두가 그녀를 실망하게 했을 것이다.


글도 늙는다. 선명히 선이 살아있던 팽팽한 낱말들도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늘어져 시계만 멍하니 쳐다보는 배 나온 아재처럼, 내 글도 소파에 늘어진 채 뭐 어쩔 거냐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글에 표현된 자조 섞인 말투와 행동들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글도 늙는다.  내 글에는 배 나온 아저씨가 살고 있다.

그를 원망하는 것은 나 자신을 욕하는 것과 같다. 내가 스스로 자처한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원망하긴 싫다. 내 삶의 현재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이로인해 오늘도 내일도 아마도 아내에게 다시 미안해할 것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나의 아내를 기쁘게 해야 한다. 나를 선택한 그녀에게 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최선을 다했노라고 스스로 다짐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되뇌고 자책하더라도 변화한 나로 나날이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바꾸고 나의 글을 바꾸고 나의 그녀를 바꾸며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나로 살아가는 삶의 핵심이니까. 지키지 못할 약속처럼,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오늘을 반드시 다짐하고자 스스로 반성문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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