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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Sep 28. 2019

홍길동 뎐

어느 논술학원에서 시작된 글짓기

1995년, 8월 광복 50주년을 맞이하고 난 국민학생에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 때문에 친구들에게는 그저 몸이 약한 아이 내지는 운동과 친하지 않은 아이였다. 왜소했어도 초반에는 여자아이들에게 나름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곧 죽어도 한 학기에 한 번꼴로 반장이나 화장을 했었다. 아니, 꼭 해야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반장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채점 받는 시험지에 빨갛게 그어진 빗살무늬가 유독 친구들에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반장이라서 친구들에게 적잖이 놀림을 받곤 했다. 성적도 나빴는데 학원은 가질 않았는 이상한 반장 아이. 학업성적과 운동신경이 곧 인기의 척도이던 시절에 신학기에는 반짝 인기가 많았으나 결국 기말 학기에는 인기가 없어지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엄마는 학원에 보내주질 않았다. 그 시절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그랬는지 모른다. 어릴 적 남들이 가던 영어학원과 속셈학원은 가본 기억이 없다. 그런 엄마가 꾸준하게 집착하며 꼭 보냈던 학원 하나가 있었다. 바로 논술학원.


우리 동네에 자그마한 논술학원이 있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마땅히 내세울 작품이 없었던 작가가 원장이었다. 국문학과를 졸업하신 원장님은 삼삼오오 모인 학원생들에게 항상 옛글과 말들을 가르쳤다. 그 교재 이름은 ‘홍길동 뎐’이었다.


지금의 한글 모양새와 현저하게 다른 이상한 글자로 기록된 책이었다. 과거 세종대왕께서 창시하신 옛글자. 그 모양이 참 난해하고 어색했어도 제법 비슷하게 읽어댈 수는 있었다. 4명이서 한 문단씩 글을 읽고 중간에 글자를 잘못 읽으면 원장님이 정정해주는 것이 수업의 전부였다. 의미도 모른 채 요상하게 생긴 글자를 읽어가며 키득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다음 해, 홍길동 뎐을 다 때고 난 후 책거리로 우리는 각자 집에서 쌀 한 봉지씩을 모아와서 함께 떡을 해 먹었다. 그리고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우리 수준에 맞게 흥미가 있을 법한 연예 기사를 잔뜩 스크랩해왔다. ‘4인조 여성 그룹, 핑클의 신곡이 발표되었다.’ 따위의 문장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논술학원 원장님은 우리에게 원고지 10매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한 글씨로 ‘잠자리’를 쓰셨다. 의중을 몰라 멀뚱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우리를 타이르며 말씀하셨다.


“잠자리라는 주제로 원고지 10매를 다 쓰는 거야.”


단순한 주제만 가지고 원고지 10매를 채우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어려운 과제였다. 박박 쥐어 짜내도 ‘푸르른 가을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친구와 함께 채를 가지고 열심히 잡았다.’ 말고는 더 이상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학원생 모두가 하나같이 누구나 생각할 법한 평탄한 단어와 익숙한 상황 묘사만을 원고지에 조용히 기록할 뿐이었다.  


원장님은 그런 우리에게 항상 다른 것들을 제시했다. 가령 고리처럼 굽어지는 잠자리 꼬리의 모양새라던가, 잠자리 눈알의 오묘한 색상이라던가, 집요하게 관찰해야만 나올법한 구체적인 글감들을 발설했다. 처음에는 3매, 그다음은 5매, 결국에는 원고지 10매를 모두 채웠다. 뒤죽박죽 하지만 주제에서 파생되고 연상되는 모든 것들을 열심히 적어나갔다. 난 그렇게 글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추억들은 살아있듯 생생하다. 그 논술학원 원장님이 쓰고 있던 금색 안경태, 학원 현관에 놓인 어항 속 빨간 금붕어 두 마리까지 모두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다. 생생했던 그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았고 여태껏 행복했었나 보다. 그래서 글을 붙들어 매며 살고 있다.


논술학원은 우연한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귀찮고 따분해서 논술학원을 그만뒀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글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으면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글을 시작할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되려 더욱 쉽고 편한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잠자리는 그저 채로 잡으면 그만이지, 잠자리의 눈알 색깔이 궁금해져 한참 동안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만약 그러했다면 반드시 후회했을 것이다.


나 역시 엄마처럼 나의 두 아들이 커서 초등학생이 되면 논술학원에 보낼 예정이다. 살아있는 순간마다 살아나갈 일생동안, 비록 보잘것없는 낱말과 문장으로 빗어냈다 하더라도 깨달음과 느낌들을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행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글은 유일하게 자신에게서 벗어나 비교적 타인의 관점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값진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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