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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Sep 24. 2019

채권의 완벽한 배신

다가올 경제위기의 원인은 아마도 채권일 것이다.

"원금 절반 넘게 날렸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왜 DLF를 팔았나?"

"전 세계 국채 34%는 마이너스 금리"


최근 보도된 DLF 쇼크의 논란이 가시질 않고 있다. 수십 년간 절대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던 독일 국채 관련 DLF 상품이 9월 19일 만기일이 도래되면서 원금의 60%에 육박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판매한 DLF 규모는 약 1,700억 원으로 투자 손실은 고스란히 서민 투자자들이 떠안게 되었다. 만약 1억 원을 투자했다면 6,000만 원을 공중에 날리는 것과 같다. 가히 도박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청난 손실률이다.


DLS는 파생결합증권이며 DLF는 파생결합증권을 편입한 펀드를 말한다. 주식, 이자율, 통화(환율), 금, 원유, 원자재 등 다양한 기초자산 가격지표에 투자해 기초자산 가격지표가 정해진 특정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면 약정된 수익을 얻는 파생상품이다. 보통 증권사나 투자은행 등의 기관에서 만들어진 지표 파생상품과 맥락이 같다. 예대마진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 은행들이 간구해 낸 신규 금융상품이었다. 금융 세계에서는 영원한 것은 정말 없는 것일까? 최근 이슈가 되는 DLS 문제는 비교적 단단하고 튼튼했던 국가에서 발행한 국채와 그 국가의 금리 변동성과 관련이 있는 상품들이다.  


독일 국채, 일본 국채 등 절대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았던 국채 파생결합상품이 속된 말로 개박살이 났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판매한 DLF는 독일과 유럽의 금리와 채권에 연계한 상품이었다. 독일과 유럽은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상황에 봉착한 후로 해마다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덕분에 독일의 채권 금리는 사상 첫 -0.7%를 기록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돈을 내고 독일 채권을 사면 독일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채권을 샀다는 이유로 추가 이자까지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마도 은행들은 독일과 유럽이 가진 국가적 브랜드가 주는 신뢰도와 변동성이 저조한 금리 변화,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유럽 국채를 무한히 신뢰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배신당했다. 상품 구조상 DLF는 금리 변동 폭이 정해진 구간에서는 4% 수익구간을 유지할 수 있지만, 반면 금리가 정해진 구간을 벗어날 경우 그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 손실이 100%까지 나올 수 있는 엄청난 위험률을 담보한 상품이다. 과연 신뢰성을 담보한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에서 판매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싶을 정도다. 물론, 은행이 이런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럽과 독일의 지속적으로 보여준 변동성 없는 금리와 탄탄한 금융구조, 각국이 발행한 국채의 안전성이 한 몫했을 것이다.


이처럼 채권시장은 몰락하고 있다. 그동안 무한신뢰로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던 채권의 완벽한 몰락이 더욱 큰 경제위기의 또 다른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과거 1980년대 15%대에 육박하던 미국 국채 10년 물 만기 금리가 현재는 1%대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20%를 웃돌던 우리나라 국채 금리도 단기 국채, 장기 국채 할 것 없이 1%대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매번 경제위기의 신호탄이라고 말하는 '장단기 국채 금리 차이'가 서서히 좁아지고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 덕분에 세계 주요국들은 금리 인하로 이에 대응했고 그 결과로 독일, 일본, 미국 등 너나 할 것 없이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을 수준까지 도달했다. 0% 금리는 차치하고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도래할 DLF 상품의 만기에 따른 손실률은 지금보다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채권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자산으로 평가하는 게 더 타당하다.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상황에 따라 채권시장이 경색되고 유동자금이 빠져나간다면 투자심리는 사라질 테고 채권시장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더군다나 국가가 가용 가능했던 통화정책은 이미 다 소진한 상태다.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 인하할 금리도 없다.


남은 것이라고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순자산 매입을 통해 쓸어 담은 돈을 다시 시장에 풀어헤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마저도 투자심리와 경제상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소비를 전혀 유도해낼 수 없다. 손안에 한 장 남아있는 카드는 정부의 지출 확대, 국민들로부터 걷는 세금의 감액 정도다. 이는 건전했던 국가 재정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각국이 사활을 걸고 눈알을 팽팽 돌리고 있는 긴박한 이 시점에서 독일과 일본의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짓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금융시장에서 절대 불변의 진리는 없다. 세계가 맞는 경제위기는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 채권시장을 향한 금융권의 신뢰 저하가 만들어 낸 파급효과는 우리가 예상한 범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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