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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Oct 21. 2019

시간을 구속한 돈

명심하라, 시간은 본래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였다.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


시간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인간 혹은 사물에 이라는 한 객체에 대해 할당된 시각의 연속적 흐름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하루라는 24시간 내에 각자 부합된 목적과 행위에 따라 우리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의식의 흐름과 행동의 반복적인 결과를 통해 우리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간은 만물에게 있어서 가장 평등하며 자유로운 권리다. 돈 그리고 명예, 권력, 자본 등 한 인간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권리들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오롯이 시간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평등한 권리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돈과 명예, 자본의 권력 등 반복적으로 우리가 쟁취하고자 하는 권리들은 모두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간의 사회화'라 칭할 수 있다.


시간이라는 주체는 매우 독립적이고 절대적이지만 시간이 우리에게 할당되었을 때는 매우 정복적이며 상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예컨대 나의 시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간과 함께 물리면서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어떤 의도와 의미를 전달하면 타인이 그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이를 수행하는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만들어낸 생산적 가치'라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동력'이다.  


이처럼 시간의 사회적 역할은 자본주의에서 '돈'과 연결고리를 통해 이어져 있다. 우리가 잠을 자거나, 휴일에 휴식을 취하며 놀고먹듯이 노동과 철저히 단절된 잉여시간 외에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의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쓰인다. 가령, 회사에 근무하며 월급을 받고 주어진 점심시간 외에 오롯이 8시간을 근무하며 시간 속에 생산력과 노동력의 밀도를 끊임없이 높이려는 행위들 말이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의 개념이 상대적이고 정복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개인이 가지고 있던 '시간 주권'도 자본에 의해 빼앗기게 되었다. 시간이 결국 돈에 의해 갇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이라는 형태로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도 돈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도래했다. 자본에 구애받는 '노동시간'의 탄생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주어진 '시간의 활용'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양극화를 만들어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시간의 권리조차 '노동시간'이라는 형태로 재화와 서비스와 같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부자'라고 일컫는 자본가는 '주어진 시간'의 가치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최고로 값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에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모든 이에게 주어진 공통된 시간의 가치가 다른 어느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사실. 성장의 밑거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라고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시간을 자본으로 구매하여 자신의 생산력을 극대화시킨다. 시간에게도 밀도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1L짜리 생수병 속에 자본으로 구매한 노동시간을 꾹꾹 눌러 채워낸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형태로 타인에게 판매가 되고 그로 인해 자본가들은 수익을 창출한다.


자 이제, 만물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더 이상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만들어졌다.  노동자의 24시간, 자본가의 24시간은 달라졌다. 자본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동일한 24시간 동안, 자본으로 소속된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구매해서 3,000시간도 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시간적 부자는 곧 자본적 부자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의 무구한 노력과 끊임없는 반복적인 행동은 시간이라는 객체에 서서히 스며든다. 결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시간 속에 투여된 노력들은 점차 쌓이게 된다. 이처럼 밀도가 높아진 개인의 시간을 값을 쳐서 부자들은 구매한다. 가령, 연봉협상을 통해 직원의 시간의 밀도를 평가하고 자본으로 기준화시키는 행위들. 부자들은 개인에게 할당된 시간을 지키면서 타인의 시간에 투여된 지식이라는 가치의 근본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만들어가고 자본을 축적해간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서비스이자 상품이다. 시간의 밀도와 동 시간 내 생산량의 차이에 따라 자본을 통해 개인의 시간을 평가받는다.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노동력'이라는 반복적인 행위에 지쳐 중간에 포기를 하기도 한다. 결코 보이지 않는 시간이 주는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무수한 나날들을 헛된 사상과 행동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는 시간 속에 투여된 노력이라는 가치를 신뢰하고 실패와 좌절 속에도 그 성공과 시간의 교차점에서 본인의 자아와 신념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이들을 성공을 쟁취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타인의 시간을 구매하여 자본주의 원리를 서서히 깨닫는다. 그들은 그렇게 부자가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시간을 역행한다거나 시간을 왜곡하여 과거 혹은 미래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지 않았다. 우리 중 대부분은 주어진 시간을 노동력의 형태로 판매하고 있는 노동자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다만 주어진 시간이 절대적이며 독립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의 시간의 밀도를 높여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행위를 벗어날 수 없을지언정,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중에도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노동과 철저히 단절된 시간을 확보하고 개인 가치의 밀도를 높이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해 나가야 한다. 시간이 돈에 구애받는 사회 속에서 주어진 시간의 자유적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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