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to the Sky (1999.12.14)
오늘 하루 어땠나요? 괜찮았나요.
어제는 너무 늦어서 전활 할 수 없었죠
괜스레 수화길 들었다 또 놨다 그렇게 밤을
지새웠어요. 조금 우습죠.
예전보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더 신경 쓰던 나이. 내게 우연한 변화가 찾아왔다. 귀갓길 버스 안에서 잠깐 듣던 가요가 좋아지던 그날에. 난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방 안에 고이 잠들어 있던 포켓몬 스티커를 몽땅 동생에게 줘버렸다. 그날이었다. 어린이에서 소년에게 가까워지고 싶었던 날.
90년대의 종말과 밀레니엄 시대의 새 출발. 1999년은 다사다난한 해였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Y2K 때문에 학교 선생님과 뉴스 앵커의 입 밖으로 시종일관 은행이 마비된다는 둥, 컴퓨터 시스템이 폭발해버린다는 둥 지금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그럴싸하게 다가올 새천년을 두려워했다. 무수한 종말론과 더불어 다가올 세상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오르던 시절이었다.
IMF가 휩쓸어간 희망도 차츰 차올라 회복되던 시기. 가슴 깊숙이 응어리진 삶의 애환들은 '순풍산부인과'와 같은 코믹 시트콤으로 달랬다. 연일 장인어른의 눈치를 보는 그 시대의 아버지, 박영규는 백수 가장으로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과 노하우를 티비를 통해 상세히 전해주었다. 울고 웃는 일상다반사 속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던 그 시절. 티비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사람들은 별 차이 없이 순수했고 순박했다.
광통신 인터넷이 보급됐다. 비교적 감성 수치가 높았던 중학생들은 '세이클럽'을 통해 온라인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유행은 삽시간에 퍼졌고 세이클럽은 일종의 새로운 문화가 됐다. 처음 들어보았던 팝송들. 잘 나가는 세이클럽 DJ가 선곡했던 곡은 듣자마자 재빨리 곡 제목을 적어두곤 소리바다를 통해 노래를 검색하고 다운로드했다. 다음날 아침, 1교시가 시작하기도 무섭게 아침인사로 우리는 팝송 제목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한 유치한 대결을 시작했다. 백스트리즈보이즈, 보이즈투맨, 스티브원더, 에릭베넷까지 팝송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라인업 아니던가.
Sony CD 워크맨을 소유한 중딩들은 남들보다 연애 속도가 빨랐다. 수업을 마친 중딩 커플은 운동장 스탠드 계단에 앉아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노래를 같이 들었다. 그것이 그 시절의 감성 충만한 연애방식이었을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남주인공이 '기억의 습작'을 듣던 그 풍경과 유사한 뉘앙스. 제법 비슷한 그림이 후미진 학교 곳곳에서 연출되었다. 그렇게 어른을 모방하고 싶던 새파란 젊음이 우리들 양볼에 가득히 영글어갔다.
"당신 하루 생활이 난 궁금했어요, 잠잘 땐 나처럼 베갤 끌어안고 자는지"
조용히 방 안에서 듣던 곡.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Day By Day>. 일주일 동안 친구에게 졸라서 딱 하루 워크맨을 빌려 집에 가져왔다. 방문을 닫고 이불로 꽁꽁 싸맨 채 수줍게 들었던 그 노래. 1999년은 파란 날의 연속이었다. 허전한 가슴을 가요로 채우던 시대, 난해한 이미지로 20대를 표현했던 TTL 광고가 각광받던 시대, 어디로 향할지 모른 채로 정처 없이 새로운 출구를 찾던 시대, 1999년은 이른 새벽, 블루데이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