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밴드 (1998. 09. 23)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 아빠
1998년 IMF가 대한민국을 모두 삼켜버렸다. 겨울보다 더 춥고 배고팠던 가을. 옆 라인 아파트에는 나의 절친한 친구 H가 살았다. 대우건설에 다니시던 H네 아저씨는 우릴 볼 때마다 항상 월드콘을 사주시던 인자한 어른이셨다. H 역시 좋은 친구였다. 난생처음으로 586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어느 날부터 컴퓨터는 더 이상 우리 차지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H네 아저씨는 컴퓨터로 빨갛고 파랗게 생긴 촛대 모양을 한 그래프를 하염없이 보고만 계셨다. 몇 달이 지나고 H는 이사를 갔다. H가 떠나는 그 날. 잔뜩 짐을 실은 용달차가 눈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댔다. 그렇게 우리는 나중에 또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학교 교실에는 텅 빈 책걸상이 늘었다. 궁금한 친구들 담임 선생님께 등교하지 않은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선생님은 검정 칠판에 깨알 같은 글씨만 쏟아낼 뿐,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전학을 갔다.'라는 무미건조한 대답만 하셨다. 친구를 잃은 슬픈 여자아이들이 말없이 울었다. 그럴 때 선생님은 서둘러 교과서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그래도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쉽게 가시질 않았다.
저녁이면 9시만 되면 켜졌던 동네 가로등은 어느새 9시가 되면 조용히 꺼졌다. 칠판 색깔처럼 까맣게 먹먹했던 밤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던 어두웠던 골목. 엄마는 일찍 자라며 방문을 닫고 조용히 불을 껐다. 아침에 되어도 가로등이 켜지지 않는 암흑의 연속.
겨울방학을 시작하던 날, 엄마가 은행을 가지 않으셨다. 나는 엄마에게 왜 출근을 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 쓰다듬어주시며 말했다.
"엄마 이제 은행 안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쉬면서 집에서 맛있는 밥해주려고. 어때 좋지?"
조금 서운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돈을 잘 번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 은행에 다니던 엄마가 회식하고 오던 늦은 밤에는 항상 나와 여동생을 위한 장난감을 사 오셨다. 11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렸던 어느 날. 사실 엄마를 기다린 것보다 엄마가 사주기로 약속한 '다마고치'를 기다렸던 그 날. 친구들에게 자랑한 새로운 장난감으로 설레어서 내내 밤잠을 설친 날이었다. 난 그 즐거움이 사라지는 게 싫었다.
"엄마 그래도 돈 많이 벌려면, 우리 가족이 맛있는 것 먹으려면 일하는 게 좋지 않아?"
"아들, 왜 엄마가 몸이 아파도 일했으면 좋겠니?"
"응, 난 엄마가 아파도 꾹 참고 일해서 돈 많이 벌어오면 좋겠어."
난 분명히 들었다. 늦은 밤 조용히 방문을 닫고 흐느끼던 엄마의 울음소리.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파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그 말에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은행에 가지 않는 것이 내가 학교를 가지 않는 것처럼 좋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다. 우리 아파트에 이삿짐 용달차가 쉼 없이 드나들 때에도 우리는 이사를 가지 않았다. 엄마는 늘 우리에게 입에 풀칠할 정도의 공무원 박봉에도 더없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더 이상 갖지 못했지만 나는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10시면 문을 닫던 동네슈퍼가 새벽 1시까지 장사를 했다. 덕분에 불 꺼진 깜깜한 밤에도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TV에서 '오락실'이라는 노래가 들려왔다. 아빠와 엄마도 함께 노래를 들었다. 그 시절 유행하던 곡. 늘 아버지는 밖에서 그 노래를 하면 안 된다며 나를 다그쳤다.
어린 시절, 철없이 1998년을 기억했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박자 속에 숨겨진 슬픔을 발견하지 못했다. 꼬마들의 작은 영웅들이 맥없이 쓰러져갔던 날. 늦은 밤 누군가 흐느끼던 울음소리에 말없이 먹먹해졌던 겨울이었다.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애처롭게 바둥거리던 국가의 모습. 정부도 기업도 그 모두가 지그시 눈을 감은채 뚝뚝 떨어지는 눈물소리만 들어야만 했던 그 시절. 이사 가던 H. 교실 한 구석에 덩그러니 비어있는 책상. 조용하고 칠흑 같던 그날 밤. 덜덜 떨리던 노후된 용달차 소리. 그 날의 그 밤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던 우리 작은 영웅들에게 4살 먹은 지금의 아들이 엉성한 발음으로 부르던 그 노래가 있었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것 같다는 미련한 생각을 해본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