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대교

자이언티 (2014.09.22)

by 안개홍

그 때는 나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그 다리 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이제 나는 서있네 그 다리 위에 그 다리에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셨다. 이로써 한 가정의 가장은 나로 교체되었다. 충남교육청 소속 교사셨던 아버지는 무수한 날들을 험지로 출근을 하셨다. 태안과 대천부터 공주와 천안에 이르기까지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했고 저녁 9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린 시절 내게 아버지는 눈매가 매서운 분이셨다. 그 매서운 눈으로 항상 나의 부족한 점만 매섭게 지적하시던 분이셨다. 단 한번 칭찬하셨던 적이 없으셨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눈치만 슬슬 살피며 아버지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아버지가 퇴근 후 집에 오실 시간에는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았고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면 그 무거워진 거실 공기가 싫어 밖으로 나갔다. 가족끼리 모여 집에서 식사를 할 때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고독함 그 자체였다. 부자지간 사이는 서먹서먹하고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무척 힘들어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뉴스를 보고 계셨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난 재빨리 방문을 닫아버렸다. 난 그렇게 아버지를 향해 벽을 치며 살았다.


“다녀왔습니다.”

"얘, 어제 내가 밖에 좀 나가라고 해서 니 아버지 안 들어오시나 봐."


아버지는 12시가 넘어도 집에 들어오시질 않았다. 엄마와 동생은 전화조차 받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나더러 밖에 나가서 아버지를 좀 찾아보라고 말했다. 한 번도 그러셨던 분이 아니시기에 나도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네를 두 바퀴 정도를 돌았을 때 골목길 벤치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 여기서 뭐하세요. 한참 찾았잖아요. 이 늦은 시간에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원망스러운 말투로 난 아버지에게 짜증을 냈다. 술에 잔뜩 취하신 아버지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셨다. 그리고 뭔가 할 말이 있으신 듯 내 팔을 이끌어 나를 당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아버지는 조용히 과거를 회상하셨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시절. 아버지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다름 아닌, 딱 한번. 나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을 향하던 날이었다고 고백하셨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고 나의 몸을 닦았던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아버지는 내 나이처럼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해서 고기 한 점 제대로 사 먹지 못하셨다고 한다. 혹독한 겨울날에는 버스 탈 돈이 없어서 1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다녔던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선 내 아들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고.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보란 듯이 키우고 싶었다고.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어나 제일 먼저 한일은 방문을 열어 내가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으며 밤늦게 집에 돌아와 내가 자는 모습을 보고 주무셨다고 말했다. 그 직장생활의 모든 고단함을 아들을 떠올리며 이겨내셨단다. 그렇게 쬐깐했던 우리 아들이 돈을 다 벌어와서 그 돈으로 친구들한테 거하게 고기도 사셨다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며 잔잔한 미소로 나를 안은 채 말씀하셨다.


한참 시간을 보낸 뒤에야 아버지는 집에 가자며 몸을 일으키셨다. 덩그러니 벤치에 놓인 아버지 지갑을 발견했다. 조용히 아버지 지갑을 몰래 열어봤다. 그 지갑 안에는 5살 때 처음 찍었던 빛바랜 내 증명사진이 들어있었다.


"사내놈이 늦게까지 퍼질러 자면 어떡하냐. 일어나라."


다음 날 토요일, 오전 6시 30분. 아버지는 내방문을 벌컥 여시곤 잠에 취해 퍼져있던 나를 일으켜 깨웠다. 마치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와 나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등을 세차게 미셨다. 흡족한 표정으로 내 등을 탁하며 치시고는 당신의 등을 돌리며 내게 말하셨다.


"시원하게 빡빡 밀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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