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 (2015.05.19)
안녕.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죠.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그렇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피곤해도 아침 점심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내가 칭찬해줄게요.
서른을 코앞에 둔 29살에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좋은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매월 21일 통장으로 들어오는 남보다 조금 많은 월급에 감사했고 60세 이상까지 정년이 보장된 안정감도 좋았다. 내 전공과 취미를 살린 일이라고 생각했다. 명함에 기록된 타이틀이 남에게 표현될 때는 꽤 그럴싸해 보였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하라는 데로 살았다. 말랑말랑하던 희망과 열정은 굳은살처럼 단단해져 갔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우며 해낼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사라져 버렸다.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내가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다. 고생하셨던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고 나를 다독여주던 여자 친구 P를 떠올리며 버텼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인가?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일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반세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할 줄 아는 것과 일 할 줄 아는 것을 나는 모르는 것 같았다. 끝없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즐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옳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나를 다그친 채로.
2015년은 직장생활이 너무도 힘든 시기였다. 내가 만들어 낸 결과는 하나같이 다 찢어발겨진 채로 공중에 휘날렸다. 사고방식부터 업무에 대한 접근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이 상사와 맞질 않았다. 반대방향에 선 채로 가속페달을 밟듯이 멀어졌다.
내가 말끔하게 끝맺지 못한 일들은 직장동료의 일이 되어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나의 이탈에 직장동료는 많은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자존감도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오후에 먹었던 점심을 하루도 안 거르고 게워냈다. 몸이며 정신이며 망가져갔다. 그럼에도 퇴사할 용기는 없었다. 절대적인 안정감이 필요했을 때 나는 중대한 결정을 해버렸다.
"결혼하자."
내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봤다. 그나마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던 존재는 여자 친구 P. 그녀는 내게 헌신적이었다. 고통스러운 퇴근을 마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 그녀는 나의 구부러진 어깨를 펴줬고 쳐진 입꼬리를 세웠다. 엄마처럼 나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어진 나를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었다. 회사에서 잔뜩 혼이 나서 정신이 이탈해버린 나를 너그럽게 칭찬해줬다. 헛헛해진 마음은 그녀의 사랑으로 채웠다.
그 시절 힘들 때마다 듣던 자이언티 <꺼내먹어요> 노래 같았던 사람. 초라함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나를 일으켜 세웠으며 바쁜 업무로 부모님을 챙기지 못할 때에도 그녀는 나를 대신해 부모님을 챙겨준 사람. 안건형 만병통치약.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가 내 인생을 온화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었고 먼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만큼 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