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해

크러쉬 (2016.05.06)

by 안개홍

하얀색 피부 앙증맞은 코에 부드러운 머리 결,

날 내려보네 널 안으면 내 맘까지 따뜻해지곤 해

내 어깨에 기대면 잠이 막 쏟아지네


내 삶의 색채가 가장 짙어졌던 2016년. 난 '우아'하고 '우와'한 경험을 동시에 겪었다. 1월 16일에는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했으며 11월 5일에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속전속결로 한해에 결혼과 출산을 마무리한 우리 부부에게 속도위반을 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다.


“그러니까, 1월 22일 하와이에서 신혼여행을 보낼 때 난 딱 한 번 피임을 하지 않았지.”


그렇다. 허니문의 낭만에 취한 저녁에, 그것도 와이키키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오션뷰 호텔에서, 거칠고 드라이한 와인을 마신 후에 난 피임을 해야겠다는 결단을 도출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덜컥 임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에 허니문 베이비가 만들어졌다.


아내의 임신소식을 들었던 친구들은 결혼 후 1년은 신혼을 즐겨야 하지 않았냐고 아쉬워했다. 사실 무더운 여름날에 몸이 무거워진 아내와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외출을 나갈 적에 그 말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긴 했다. 회식자리와 술자리에 나가서도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쳐다봤다. 아내의 몸과 다리가 퉁퉁 부을 때도, 아내의 입덧 때문에 좋아하는 빅맥을 먹지 못할 때도 난 가끔 아내의 뱃속에 있는 그 녀석을 원망했다. 그 녀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2016년 11월 5일 오전 9시 15분, 안건형님 남아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축하합니다.”


분만실에서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어금니가 시릴 정도로 굳게 입을 다문채 긴장하고 있던 그 순간, 의사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렸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눈 앞에 들려있는 너무도 작은 남자아이. 눈부신 햇빛 속에 반쯤 고개를 숙여 실눈을 뜨듯이 나는 그렇게 첫째 아들을 반겼다.


“아이고! 이놈 좀 보게!”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손자 바보가 되어버렸다. 60세가 넘으신 양반이 갓난아이를 위해 재롱을 떠셨다. 까르르하고 아들이 웃는 모습을 이끌어내기 위해 생전 보지도 못했던 통기타를 짊어메고 열심히 연주도 하셨다. 참으로 난해하고 어색한 경험. 내가 일생동안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광경들을 아들은 일순간마다 손쉽게 만들어냈다. 무던하고 식상했던 일상이 각별한 만남을 통해 변화했다. 하늘이 정하시고 나와 아내가 함께 만들어 낸 새 생명을 통해서.


앙증맞은 코와 입이 나를 닮았다. 머리 뒤통수가 납작한 것도 나를 닮았다. 귀찮은 울음을 터트릴 때 미간을 찡그리는 것조차 나를 닮았다. 연거푸 감탄사를 터치며 난 아들을 사랑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했던 초보 아빠의 삶.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 뉴스에서 어린이집 유아 폭행 사건을 보도하던 날, 난 분노한 채로 욕설을 퍼부으며 감정의 날을 세웠다.


“저 어린애들이 뭐가 밉다고! 나참, 기가 막히네 정말.”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면 동물적 본능이 변종의 시대로부터 이 아이를 지키고 싶어 했다. 땅, 공기, 바다, 마음까지 오염된 환경과 불평등한 자본주의 시스템, 결코 온전하다고 볼 수 없는 사회의 정신적 허기까지 모든 것이 염려되었다.


어려운 생각들이 나를 찾아왔다. 혹여나 변화의 시기를 맞이한 아들은 나를 원망할까? 아버지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자지간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어쩌나? 아들이 커서 내가 답을 내줄 수 없는 것을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난 허겁지겁 고민을 고민하는 초보 아빠로 2016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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