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2009.10.27)
좋은 사람 좋은 사람 만나서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잊고서
아프지 말고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
그 말만은 그 말만은 하지 마
차 올라도 차올라도 뱉지 마
그렇게 사랑한 우릴 절대 버리지 마
군인이었으니 당연히 당시 유행했던 인기 아이돌, 카라의 <미스터> 엉덩이춤이라던지 손담비의 <미쳤어>, 2NE1의 <롤리팝>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2009년, 그간 1년 반을 넘게 고무신을 신고 나를 기다려오던 Y가 나에게 이별을 고하던 그 날. 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너무나 한심하고 철부지였던 남자였다.
난 변변치 않은 군생활과 그녀의 일상생활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그녀의 삶마저 질투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웃음소리마저 원망했다. 당연히 누렸어야 할 그녀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녀도 일상 속에서 괴로워하길, 그래서 내 생각을 더 많이 해주기를 바랐던 철부지였다. 매일 저녁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고 소리를 지르며 이기적인 자존심을 내세웠다. 수화기를 놓을 때면 우린 항상 싸운 상태였다.
10월의 어느 날. 수화기에 대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녀에게 시비를 걸던 날. 참다 참다가 그녀가 흐느껴 울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프단다. 대장암이라고 하셨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말문이 막혀버렸다.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정말 지쳐 쓰러질 것 같다고. 이제는 제발 그만해줬으면 좋겠다고.
"오빠, 나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내가 떠나야 그녀가 행복해질 것 같았다. 한참을 말없이 공중전화 박스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웠다. 난 지금 이 순간을 반드시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상처를 준 행동만 생각이 났다. 난 Y를 붙잡을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놈이었다. 너무나 힘들어할 그녀에게 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숙하지 못했던 사랑. 결국 그 미련함은 후회로 변질되어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날 이후 수화기 너머로 통화연결음만 들렸다. 그녀는 더 이상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끝이다. 좋은 이별은 아닐 것이다. 난 Y에게 상처 투성이의 아픈 기억일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그녀는 미치도록 내가 미울 것이다. 그녀를 애써 밀어낸 것은 나일 것이다. 내가 너무 못되고 별나서 그녀를 놓친 것이다.
근무를 하던 중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린이 부르던 <실화>를 들었다.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밤늦게 홀로 근무를 하다 말고 뛰쳐 나가 밤새 통곡했다.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뒤늦게 느낀 이별이 실감 나지 않아서, 너무 모자랐던 남자라서, 결국 지키지 못할 말들이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끝내야 했다면 대체 왜 그랬을까. 아쉬움과 서러움이 한없이 복받쳐 올라와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 해 겨울을 보내고 난 군대를 전역 했다. 대학동기들에게 우연히 Y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 수술은 무사히 잘 마쳤고 건강을 회복하시고 퇴원을 하셨단다. 그녀는 휴학을 했으며 학교에 없다. 그녀의 친구들은 안부를 전하주고는 더 이상 그녀에게 연락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내게 조심스러운 당부를 했다. 가끔 그녀를 직접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것이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일 것이다. 그렇게 첫사랑은 허무한 이별로 끝을 맺었다.
일기장 넘기듯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그녀를 잊으며 살았다. 담담하고 침착하게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 아련한 감정도 무뎌진 것을 느꼈다. 내가 견딜만해졌으니 이제 그녀도 견딜만할 것이다. 끝까지 이기적이게 나를 미워하는 감정도 차츰 사라지고 오직 좋았던 기억들만 그녀가 생각하길 바라면서. 난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길 바랬다.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그녀가 어디에 있든 어느 누구를 만나든 그 누구보다 행복해하길 바란다. 그녀는 내게 좋은 사람이었고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