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얼리 (2008.02.20)
섹시한 눈빛과 뜨거운 몸짓에 좀 더 다가와
이 밤을 지새울 한심한 늑대들 나를 안아줘.
Baby, One More Time.
까까머리를 한 군바리. 똑같은 군복과 똑같은 머리에 뒤돌아서 있으면 부모님마저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 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받은 갓 이병이 되었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대나무처럼 서있어야 하던 시절.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던 그 시절은 절반은 구속된 상태로 절반은 긴장한 상태로 살아가는 날들이었다.
엄격한 규율과 법칙에 의해 마치 태엽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회에서 누렸던 평범한 일상들의 소중함을 알았다. 새벽 6시에 기상해서 저녁 10시가 되면 취침했다. 완벽하게 정리되고 통제된 삶. 간혹 코를 골거나 잠꼬대가 심할 경우에는 여기저기서 선임병들의 베개가 날아들었다. 좋게 말하면 철저한 공동체 사회 속에서 불필요한 습관들을 제거했으며 나쁘게 말하면 개인적 자유를 빼앗기는 시기였다.
그 긴장감 속에서 여자 아이돌은 일종의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그들을 맞이할 때면 내무실에는 생기가 돌았다. 장병들은 관물대에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두고 지그시 바라보며 하루를 달랬다.
"와! 죽이네. 죽여줘."
나른한 주말 오후 경. 내무실 방바닥에 와불상의 자세를 취한 채로 군대 선임은 쥬얼리의 <One More Time>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간신배처럼 그 실세 선임 옆에 착 달라붙어 온갖 재롱과 아부를 떨던 일병 선임은 말이 끝나자마자 관물대에 붙여놓은 쥬얼리 사진을 떼어다 실세 선임한테 갖다 바치며 말했다.
"요즘, 쥬얼리가 최고지 말입니다."
"이야~ 저 춤 끝내주네, 야 한번 춰봐라."
"옙, 알겠습니다."
땀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그것도 박력 있는 군인 제스처로 춤을 추는 일병과 춤을 보곤 킥킥대는 실세 선임 옆에서 나는 조용히 내무실 방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 당시 내무반 군 문화 속에서는 막내인 이병이 티비에 눈을 돌리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절. 그저 바닥만 응시한 채로 쿵작거리는 그 리듬 속에서 열심히 바닥을 쓸어댔다.
"야, 이병. 너 방금 어깨 들썩인 거냐?"
"네! 이병 안. 건. 형"
"어깨 방금 들썩였냐고..."
"아닙니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 사회에서 배워간 물은 철저하게 쥐어짜내야 했다. 실세 선임병은 쥬얼리 노래에 맞춰 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방바닥 청소를 했다고 나무랐다. 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정말 내가 어깨를 들썩거렸나 싶을 정도였다. 열린 귀라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들어야 했지만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시늉을 해야 하는 황당함 속에서.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나 보다. 정말 그랬나 보다.
군대 문화는 그랬다. 입소 순으로 나래비 세운 뒤에 가장 빠르게 군대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특권을 줬다.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특권. 아무 때나 시비를 걸 수 있는 특권. 개중에는 만약 사회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사람들이 간혹 주어진 특권을 기분대로 무리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야, 이병 새끼들 군기 빠져서 안 되겠다. 다 집합."
잠깐 내가 어깨를 들썩인 것으로 청소를 하다 말고 동기며 맞선임이며 이병들이 죄다 불려 나가 얼차려를 받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둔 채로 선임들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다. 몇몇은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몇몇은 내가 미웠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전화를 받을 때에도 의자에 앉아서는 안되었으며 이병은 싸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 반경 5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아야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엄마가 보내준 사제 팬티를 입어서도 안되었다. 심지어 취침시간에 잠을 자야 할 때도 최선임에게 '저 이제 자리에 누워도 되겠습니까?'라며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음부터는 청소할 때 어깨 들썩이지 마라. 알겠냐?"
나도 모르게 유치하고 치졸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사회의 때가 쫙 빠진 진정한 군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표정들이 너무 진지해서 '설마 진심일까?'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아차 싶을 때도 있었다. 한동안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쓰레기장 청소를 할 때, 빨래를 할 때, 먹다만 짬통을 비워야 할 때마다 지겹도록 쥬얼리의 "Baby, One More Time."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난 그 노래를 싫어했다.
2008년은 그런 한 해였다.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하찮은 위치에서 새로운 문화와 관습을 배워가던 시기. 그나마 군생활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은 것이라고는 마음이 맞는 선임과 함께 생활했다는 것. 내가 잘 따랐던 그 선임은 B일병.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다녔고 책과 글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공통분모가 많았던 그와는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부조리한 이 실태에 대해 함께 비판하기도 했다.
그가 군생활을 하며 쓴 소설이 있었다. 그 소설의 이름은 '욕망의 쓰레기통'. 화려한 수식어는 덜어냈고 절제되고 담담한 문장으로 내용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짧게 글을 쓰는 법, 덜어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의 관물대에는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김기택 시인의 시집 <소>와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간간히 그가 가진 책들을 빌려 읽기도 했으며 군부대에 있는 도서관에 함께 들러 책을 읽기도 했다.
그는 내 선임이었기에 야간이나 주중에 함께 외곽 순찰을 도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우리 세대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 당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시기였고 20대 초반 청년들은 너 나할 것 없이 재빠르게 군대에 입소를 신청하던 시절이었다. 우습게도 당시 2008년에는 1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군대에 입소할 수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학교를 휴학하고 군대에 온 것이었다. 막상 군대를 나가도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었다. 취직에 성공한 20대는 대부분 비정규직이었으며 평균 급여가 88만 원이었다. 암울했다. 농담 삼아 서점을 열고 책이나 팔고 실컷 읽고 살자, 포장마차나 차려서 소주나 마시자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히 'N포 세대'로 많은 젊은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지금도 군대 가려면 몇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11년 전이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 일병, B는 현재 동아일보 기자로 현실과 타협하며 살고 있다. 종종 삶에 지쳐서 고단할 때쯤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럴 때마다 군대 시절 생각이 난다. 맹렬하게 비판했던 그 시절과 지금은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고민해본다. 그리고 실세였던 그 선임병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