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2006.10.10)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면
텅 빈 거리 어느새 수많은 네 모습만
유난히 혹독하게 추웠던 2006년. 남들보다 1년을 지각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11시까지 재수학원에서, 난 다시 20살의 고3 학생이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사실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한데 모여 '우리는 실패자가 아니다'라고 서로를 위로했다는 것.
따뜻했던 봄날과 외로웠던 가을날이 지날 때까지 우리는 제자리에서 각자의 꿈을 위해 반듯하게 살아갔다. 대학에 먼저 간 친구들은 싸이월드에 벚꽃축제에 놀러 간 사진, 풋풋한 연애를 하던 사진, 선배들과 동기와 함께 엠티에 놀러 간 사진으로 찬란한 일상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밤늦게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들의 일상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만 했다.
상경했던 친구들은 방학을 맞이해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고 종종 난 그들을 만났다. 지독한 소주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각자의 대학교에서 배워온 술자리 게임 우월성을 견주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술자리 게임이 시작되고 난 멀뚱히 앉아서 방황했다. 마음껏 웃을 수도 없었다. 타원형의 달리기 트랙을 끊임없이 달리다보니 모든게 지치고 버거웠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의 정신이 채찍질로 내 자신을 마구 때렸다. 11시가 넘기 전에 자리를 나와 고요하고 한적한 거리를 거닐며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들었다.
"아들, 친구들 만난다면서... 무슨 일 있었니?"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도 싫었다. 붉게 충혈된 눈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성급히 방문을 닫고 책상 위에 앉았다. 꼬깃꼬깃해진 영어단어책을 뒤적거렸다. 공부가 되지 않는다. 지금 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왜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가야 할 길은 과연 어디인 걸까?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스탠드 등만 우두커니 켜져 있는 적막하고 어두운 공간. 쉽게 위로받을 수 없는 재수생의 슬픔.
새벽 1시. 자리를 박차고 공원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내달렸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을 때 다시 눈을 떠보니 집에서 한창 멀리 떨어진 학교였다. 진동벨 소리가 울렸다.
"어디냐? 왜 말도 없이 먼저 가고 그래..."
친구들이 학교로 찾아왔다. 왜 이곳에 혼자 있냐고,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고 내게 묻는다. 친구들 손에는 바람결에 촛불이 꺼지지 않게 박스로 둘러싼 생일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보내고 있는 하루는 지난 1년의 연속일 뿐, 너무 지치고 버겁고 외로웠다. 그래서 쪽팔리게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고등학교 친구들, 동네 술집, 걷고 있는 거리와 그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았다. 함께 보냈던 추억도 반가웠고 모든 것이 그리웠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였다. 나만 변했고 내가 겪고 있는 상황만 변했을 뿐. 그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슬프게 했는지 모른다.
몇 개월 후 제법 바람이 쌀쌀해진 날. 난 수능을 다시 보고 대학에 갔다. 어른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난 스스로 행복했다. 씀씀이는 알 수 없지만 단지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싶은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숨겨왔던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광고홍보학부에 진학했다.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최고야. 난 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난 1년 전. 엄마와 함께 우울한 저녁을 먹었던 그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홀가분 한 마음으로 밝게 웃었다. 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시간을 낭비한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이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 가슴에 깊게 새긴 채로 엄마에게 말했다.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그동안 아프고 외로웠던 날을 반드시 보상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