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 WANNABE (2004.01.19)
어쩜 살아가다 보면 한 번은 날 찾을지 몰라
난 그 기대 하나로 오늘도 힘겹게 버틴걸
소몰이 창법이 고등학생 마음을 울렸던 시절. SG 워너비의 곡들은 오락실 노래방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불러야 할 오프닝 곡이었다. 그들은 얼굴 없는 가수로 브라운관에서는 전혀 모습을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가요 각종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 단골손님도 역시 SG 워너비 노래.
당시 여자 친구가 있던 친구들은 이 노래를 주야장천 연습했고 이들 덕에 가수의 꿈을 몰래 키우던 녀석도 생겼다.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우리는 ‘너를 붙잡고 싶지만’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떼창으로 함께 불렀다. 어린 청춘이 어른 연습을 위해 꼭 필요한 곡이라고 해야할까?
오후 10시 30분까지 우리는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말이 자율학습이지 그 시절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고등학생들은 죄다 남아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그 시간만 되면 적막한 복도에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는 선생님 발자국 소리만 울렸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도 내어서는 안 된다는 선생님의 엄포에 바짝 긴장한 우리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참고서를 읽어댔다. 그 시간에는 메가스터디 인강을 들었던 PMP도 게눈 감추듯 했다. 적막한 그 고요함은 우리에게 또 다른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야 SG워너비 노래 들을래?"
"샘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몰래 들으면 되지~ 야 한쪽 귀에 껴봐."
그 시절 우리는 MP3 하나씩은 장만하고 있었다. 새벽같이 등교하고 깜깜한 저녁에 하교를 할 때는 꼭 있어야 할 필수 아이템. 512MB, 저품질 노래 20곡 정도는 가뿐히 저장해서 들을 수 있는 용량. 암흑의 경로든 친구를 통해서든 좋아하는 곡들은 이메일로 서로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그 누구의 노래 목록에도 항상 빠지지 않았던 가수가 바로 SG워너비.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 음색은 간혹 가다가 야자타임의 금기를 어기게 했다.
"28번, 29번 복도로 나와."
책상에 적힌 번호를 확인할 때는 이미 늦었다. 또 하나의 희생양이 복도로 불려 나간다.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공부에 방해가 되던 시절. 복도에 울려 퍼지는 매타작 소리와 희생양의 비명소리는 금기를 어겼을 때 행해지는 참혹한 본보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을 쉽게 떨치진 못했다. 31번 친구는 수업시간 중 남몰래 <TimeLess> 노래를 부르다가 복도로 불려 가기도 했다. 그 친구는 가수의 꿈을 키우던 놈이었다.
적막함이 종소리와 함께 증발하는 쉬는 시간. 폭탄맛으로 잔뜩 버무려진 닭꼬치를 사 먹기 위해서, 우리는 서둘러 학교 입구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폭탄맛은 별 5개짜리 도전 대상이었다. 섣부른 도전자들은 매운맛의 고통을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감내해야 했다. 그 매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회피하고 싶었던 자들은 한 손에 '쥬시쿨' 음료를 달고 살았다. 교복 바지 사이로 칼바람이 들이닥치는 겨울에도 우리는 매점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값비싸고 두툼한 패딩을 걸치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채로 종소리가 시작되기 무섭게 열심히 달려 나갔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학창 시절, 닭꼬치는 일용할 간식이었다.
간혹 엄청난 금기를 어기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 그날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땡땡이 모의를 시작했다. 기필코 오늘은 영화를 보겠다는 신념으로 선생님께 보고해야 할 각자 합리적인 알리바이를 만들어두었다. 할리우드급 연기로 땡땡이에 성공한 친구들이 영화관 앞에 모여들었다.
영화 <늑대의 유혹>은 신세계였다. "-_-, 죽고 싶냐? O_O 왱?"과 같이 청춘의 솔직한 감정마저 키보드 속 이모티콘으로 표현한 희대의 소녀 작가 귀여니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영화였다. '까리하다. 간지 난다. 오나전. 안습. 아헿헿. 다굴, 야르'와 같은 인터넷 용어와 함께 ‘간 Zㅣ남’, ‘ⓔ뿐겅듀’와 같이 누구나 영문자와 특수문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한글을 만들어가던 시절. 그때는 채팅창에 정자체로 글을 쓰면 왠지 평범하고 고리타분한 학생으로 평가받았다. 공인들도 주체할 수 없이 북받치는 감정들을 모아 '난 ㄱr 끔 눈물을 흘린다'라는 글을 아무렇지 않게 기록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두발 자율화가 당연시되었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구레나룻 옆머리 1cm에도 목숨을 걸던 시절. 폭풍처럼 유행하던 '샤기컷'. 주렁주렁 주머니가 달린 '카고 바지'를 입은 강동원이 스크린 관에 등장하면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어두운 영화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시절 은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얼짱 간지'.
그 영화가 개봉된 이후로 학교에 얼짱 붐이 일었다. 잘생겼다고 소문난 친구들을 보기 위해 학교 앞에는 여학생들이 즐비했다. 얼짱의 하두리 캠 촬영본과 실물을 비교하고선 실망한 채 돌아가는 여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남학생들은 애쓰게 기른 머리카락이 학생주임 선생님으로부터 잘려나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외계어를 잔뜩 쓰던 그 고등학생은 어느새 커버려 요즘 10대가 쓰는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30대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외계어'라는 말은 세월이 흘러 '신조어'로 변했다. 외계어와 인터넷 문화로 표현된 우리 세대의 특징들은 어느새 고리타분하고 낡은 구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구식이 된 외계어는 Timeless 가사처럼. 어쩌면 살아가다 한 번쯤은 찾게 되는 어린 시절의 값진 추억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