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

임창정 (2003.06.05)

by 안개홍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울고 있니 내가 오랜만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대 소중한 마음 밀쳐낸 이기적인 그때의 나에게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 듯이 외쳤어.


2003년 2월 18일, 역사상 가장 많은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가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던 날.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지체장애 50대 남성이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에 불을 붙여 일어난 대형 참사. 오전에 일어난 청천벽력과 같은 사고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한 아이의 어머니와 한 어머니의 딸이 세상을 등졌던 날. 이 사고로 열차는 전소한 채로 잔혹하게 뼈대만 남았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날 오전 아버지는 급하게 대구 작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사고가 발생한 건 아닌지 발을 동동 구르셨다. 다행히도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 친척 여동생들은 사건 당시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다. 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진 못했다. 텔레비전으로 보도되는 너무나 처참한 광경. 국어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다 만 채로 급히 교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어 현장사고 중계방송을 틀었다. 그 지하철 안에는 우리와 같은 고등학생도 타고 있었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면 희생자 가족들은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간 그 처참한 시간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새까맣게 타버린 지하철 입구로 뛰어가다가 소방관에게 붙잡힌 아저씨,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아무나 붙잡고 애원하던 아줌마,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들이 떠나가는 광경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그 날은 잠 못 이룬 영혼들을 추모하기 위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었을 것이다. 끝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강을 건너 우리와 영원히 작별해야만 했던 슬픈 영혼들.


"기다리지 마."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해주겠어 돈가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죽음을 앞둔 그들이 다급하게 가족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어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들은 소중한 아빠였고 엄마였으며 누군가의 남편이자 부인, 아들과 딸이었다. 그 뜨거웠던 공간에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그들은 떠나는 마지막까지 남겨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도 미안한 마음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생을 연명하고 있어서.


그 날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난 임창정의 '소주 한잔'이라는 곡이 떠오른다. 그날의 영혼들에게 이생에 남은 가족들이 꼭 하고 싶었던 말을 기록한 것 같은 가사들. 쓸쓸하고 어둡지만 아련한 감정이 노랫말 구석구석에 온전히 담겨 있던 <소주 한잔>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한동안 1위를 유지했다.


"대구 시민 여러분, 이날을 잊지 맙시다."


기억공간에 새겨진 문구. 숭고한 생명이 떠난 그 시간들이 지금도 대구 지하철 1호선 한편 '기억공간'이라는 장소에 담겨있다. 검게 그을린 벽에 그들을 추모하는 글들이 무수히 적혀있다.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들. 절망스럽고 참혹했던 그날을 대변하듯 맥없이 녹아져 내린 공중전화부스. 나의 일이 아니어서, 먹고사느라 바빠서. 기억공간은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혀갔다. 나 역시 1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잊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현실에 얽매여 살아갈 때도 종종 있었음을 조용히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몇 년 전 방문한 그곳에서 먼저 간 지은이에게 쓴 아빠의 편지를 보았다.



사랑하는 내 딸아.


'지은아' 부르면 '아빠예요?' 하며 폰을 통해 반색을 하던 너의 목소리는

두 팔로 아빠의 팔을 감싸 안고 따라 걷던 너의 모습은

애통하다. 절통하다. 분통하다.

네가 세워 둔 승용차는 아직 강의를 하던 학원에 세워져 있는데,

사랑하는 내 딸. 착한 내 딸아.

아빠가 이 세상 남은 삶.

십 년 일지 이십 년 일지 삼십 년 일지 몰라도 기다려라.

창녕에서 일주일마다 올라와

된장찌개 끓여 쌈 싸 먹던 그 날의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이 세상 일주일 같은 시간 이리.

그래도 네 모습 아롱거린다. 아빠가 너를 낳고 너를 죽이는구나!

아빠, 엄마, 살날이 백 년이면 뭣하나.

너 간 곳 내가 가고 내 딸 다시 온다면 무엇을 망설일까! 무엇이 아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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