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필승 코리아

윤도현밴드 (2002.07.24)

by 안개홍

오~필승 코리아! 오~필승 코리아!

오! 오! 오레! 오레!


내 인생에 있어 둘도 없는 역사적인 해. 2002년 한일 월드컵. 우리는 한반도로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초청했고 우리는 안방에서 월드컵 4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북소리에 반응하던 했던 7월. 'Be the Reds'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날. 거리응원 인파로 광화문 사거리가 붉은 물결로 넘실대던 시기였다. 세계인의 축제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을 기록한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내가 살던 대전에서 이탈리아와 8강전이 열렸다. 국가와 교육청은 합심해서 우리가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서둘러서 수업을 조기에 마치고 12시에 집에 가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교문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교복 단추를 풀어헤치고 재빠르게 자랑스러운 빨간 티로 환복 했다. 1997년의 IMF 시련을 극복하던 해. 국민들은 마음껏 표효했다.


세계 축구 여론은 대한민국의 패배를 점쳤다. 2002년 이탈리아 아주리 군단은 넘사벽 그 이상이었다.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이자 뛰어난 피지컬로 무장된 군인들이었다. 말디니, 토티, 부폰, 잠브로타, 비에리, 가투소. 몸값만 당시 603억 원. 내로라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 리그를 모조리 씹어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 리그는 전성기를 맞이한 월드클래스들의 집합이었다.


우리는 장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대전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호루라기, 에어봉, 깃발, 유니폼 등 각종 응원도구를 챙겼다. 당시 표를 구하지 못한 대전 시민들을 위해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야외 응원 전광판이 설치되었다. 설기현, 이천수, 박지성, 홍명보, 안정환, 송종국, 황선홍. 대한민국 최초 16강을 달성한 그들은 우리에게 영웅이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할 때 손과 발이 차가워졌다. 선수들 만큼이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긴장했다.


주심이 경기 시작 휘슬을 불었다.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강했다. 전반 18분, 비에리 헤딩골로 이탈리아는 선제 득점에 성공했다. 든든한 대한민국 수비수 김태영은 복서 출신 비에리의 강력한 팔꿈치에 맞아 코에서 피를 흘리며 경기장에 쓰러졌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김태영 선수. 김태영은 대체 불가한 노련한 메인 수비수였다. 그를 뺄 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 코치진의 심각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경기방송을 중계하던 중계진도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아... 코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요. 부상이 심각해 보입니다. 어쩌죠?"

"중요한 경기였는데 이거, 대한민국에게는 치명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태영 선수가 교체되나요?"


대한민국 노장 수비수 김태영은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어나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박수소리. 카메라에 클로징 된 김태영 선수의 얼굴.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념. 아마도 경기장에 뛰고 있던 다른 선수들도 모두 느꼈을 것이다.


전반전이 종료되고 다시 시작한 후반전. 투지를 불사르겠다는 선수들의 투혼이 전광판 밖으로도 느껴졌다. 대한민국은 지고 있었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부서질 정도로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그날의 경기는 대한민국 투혼의 상징이었다.


경기 종료를 5분여 앞둔 후반전 43분. 사람들은 주섬주섬 야외 응원장에 펼친 돗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설기현 선수의 동점골이 터졌다.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설기현 선수는 표효했다. 응원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환호와 함성소리가 대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골든볼 연장전.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한 골만 더 넣으면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달성할 수 있었다. 좌불안석의 응원단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일어나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조마조마한 그 순간. 안정환의 머리로 공이 날아왔다.


'어~~ 안정환 선수 헤딩~~~~~~~~~~ 슛~ 고올~~~~~ 골입니다!"


목이 잔뜩 쉬어버린 흥분한 중계진의 그 쇳소리가 나올 때 모든 국민들이 소리 질렀다. 역사적인 순간. 페널티킥 실패로 마음에 짐을 갖고 있던 안정환 선수는 골을 넣은 그 순간에 경기장에 누워 목청껏 울었다. 선수들은 안정환 선수를 에워싸고 함께 울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경기. 경기를 중계했던 해설위원도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촬영했던 촬영기자도 볼을 가져다주던 볼보이도 모두 얼싸안은 채 대한민국의 승리를 자축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의 감정들이 있는 있는 힘껏 뿜어져 경기장에 흘러내렸다.


태극전사들은 스페인을 물리치고 준결승전에 독일에 패배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유명한 기사 헤드라인은 그 해에 태어났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명예 국민이 되었고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승리의 표식이 되었다. 축구라는 스포츠로 모두가 하나 되는 시기. 한동안 어려웠던 동네 치킨집 사장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지독한 IMF 외환위기의 그림자를 희망으로 걷어낸 한 해. 여전히 가끔 2002년의 기억들을 소환하면 닭살이 돋는다.


2002년은 정말 월드컵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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