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Go Back)

다이나믹듀오 (2005.10.26)

by 안개홍

난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내 인생은 언제나 삐딱선

세상이란 학교에 입학 전

나는 꿈이라는 보물 찾아 유랑하는 해적선


집안의 모든 가족들을 긴장하게 하는 고3이 되었다. 과거 리니지에서 용사처럼 몹을 때려잡던 고3형의 모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 형은 잘 지내고 있을까, 좋은 대학에 갔을까.


학업 스트레스 때문인지 매번 소화불량이 걸려 고생했다. 내 인생을 단 한 번의 시험에 던져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던 시기. 어린 내가 짊어지기에는 비교적 큰 무게감. 학교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구속. 고3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몇 개. 진득하니 책상에 앉아 열심히 참고서를 보거나 학원 단기특강을 다녀야 하는 것이 전부였던 날. 어른들은 모두 한 입으로 수능시험만 끝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 시절 고3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사범대. 실력이 한참 부족했음에도 아버지의 말씀대로 나는 국어교육 사범대에 가려고 노력했으나 이제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내실력으로는 사범대에 절대 갈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담임선생님은 아이들과 개별적 면담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모의고사 성적을 보시곤 내게 새로운 적성과 꿈을 안내해주셨다. 지금 이 성적으로는 간당간당하게 갈 수 있는 국립대학교 인문학과에 가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되었던 시절. 나는 나의 꿈도 삶의 의미도 잃었던 시기였다.


2005년 11월 23일, 수능시험을 보았다. 어느 해보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불던 아침. 아침부터 시험 배정학교에서 새벽같이 대기하던 학교 선생님과 2학년 후배들이 준비한 커피 한잔조차도 목구녕으로 쉬이 넘어가질 않았다. 전날 난 불면증에 시달렸다. 새벽 3시가 될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고 불안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방 문을 선뜻 여시질 못했다. 시계의 초심 소리가 지나갈수록 점차 초조해졌다. 내일 시험을 못 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납덩이가 되어 내 가슴 전체를 꾹꾹 채웠다. 그날, 난 내 인생이 망했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난 수능을 망쳤다.


17시가 되어 수능시험을 보고 학교를 나오던 순간, 난 울음을 터치고 말았다. 밖에서 한없이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안색이 굳어졌다.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라고 난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미안하다고. 목놓아 울어댔다. 엎드려 울고 있는 나의 등을 어루만지며 엄마도 함께 울었다.


그날 엄마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두었다. 내가 좋아하던 참게요리와 해산물이 잔뜩 식탁 위에 올려졌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들어왔다.


10년이 넘게 갇혀있던 학교에서 이제 해방된다는 후련함과 드디어 성인이 된다는 기대감이 뒤섞여서 먼지처럼 교실 공간을 두둥실 떠 다녔다. 1년간 고이 모셔둔 게임기를 학교 들고 왔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오전 내내 틀어줬다. 그래도 전혀 신나지 않았다. 온화한 공기 속에서 철저히 나는 혼자였다.


암흑 같던 12월. 수능시험성적표가 학교에 도착했다. 잠시 잊고 있던 그날의 공포가 엄숙하게 다시 나를 찾아왔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짓밟힌 내 인생에 대해 절규했다.


한없이 방황했던 시절. 어린 나이에 실패란 쓰디쓴 맛을 처음 맛본 시기. 고집을 부렸다. 실력도 되지 않으면서 높은 대학에 지원했고 당연히 떨어졌다. 모든 걸 거부했다.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나를 다그쳤다


나와는 반대로 친구들은 하나둘씩 길렀던 머리에 파마를 하고 염색을 했다. 꿈꾸는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수업을 마치고 놀러 다니기 바빴다. 난 그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다른 결과로 인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젊은 날에 인생이 선사한 교훈을 아주 뼈저리게 느꼈다.


수능은 곧 인생의 전부였다. 평등하고 반듯했던 마라톤 트랙에서 벗어나 삶의 정상을 향하는 각자의 산행길을 찾아가야 할 때. 누군가에게는 험난하며 누군가에는 쉬운 길. 난 마라톤 트랙 끝자락에서 산을 오르지도 못한 채, 다시 첫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의 노래로 위안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노래 가사처럼 하루빨리 훌쩍 어른이 되고 싶었다. 20대가 되어서 지금의 실패가 아문 상처가 되길 끝없이 바라고 바랐다. 남들보다 늦은 1년을 어떻게든 복구해야 한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 분통하고 억울해서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12월 31일. 서둘러 난 재수학원을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은 채 2005년을 내 인생에서 지우기로 다짐했다. 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이건 슬픈 자기소개서. 친구들아 sing it together.

돌아와 줘 뜨거운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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