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인간 Aug 24. 2020

에너지

기운 혹은 열망이라고 표현되는 단어

과거의 나는 그랬다. 제 각각 사람과 사물에 따라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이를테면 산의 한가운데처럼 고정된 자리에 특정 에너지가 없으면 보존되는 돌덩이는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다고 믿어왔다. 돌덩이에는 아무런 기운과 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두 달 전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돌덩이에는 영혼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라는 에너지가 끊임없이 돌덩이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 돌덩이는 순간 몇 초 동안은 변화가 없겠지만 수백 년, 수천 년 후에는 지금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에너지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모진 풍파와 폭우 그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돌덩이는 지금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책에서는 돌덩이에 속해있던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이라고 표현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로벨리는 동적인 사물은 움직임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 가설의 단순한 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러닝머신 위에서 한없이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러닝머신은 보존된 공간에서 고무 벨트만 움직일 뿐이지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나의 육체는 한없이 다리를 바삐 움직이면서 운동을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서 고요히 러닝머신 상단에 표기된 시간의 움직임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면 정말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러닝머신은 보존된 공간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에너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류 에너지를 통해 벨트를 움직이고 그 벨트 위를 달리는 나의 육체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러닝머신은 영혼이 없는 존재일지라도 에너지가 없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간혹 이상한 상상을 즐기게 된다. 과연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흙과 물, 나무와 공기들이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아닐까? 그 에너지가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되거나 변경할 뿐이지 지구 상에서는 영원히 선순환 구조로 에너지를 빼앗고 뺏기면서 보존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람은 어떨까? 사람에게도 분명 에너지가 존재한다. 특정인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아우라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카리스마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라고 말하기도 하는 그런 에너지. 그 에너지의 송출량에 따라 사람은 주눅이 들거나 간을 보거나 한다. 사람도 본연 동물의 일종이기에 분명 그런 에너지를 느끼면서 본능적으로 타인을 파악하는 것 같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는 '시간'을 열의 속성을 가진 에너지로 표현한다. 열의 속성이라 함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며 이를 역행할 수 없다는 성질을 말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할 뿐 미래에서 현재로 또는 과거로 다시 재생할 수 없다. 마치 뜨거운 냄비에 끓인 물이 시간이 흐르면 다시 미지근해지고 차가워지는 것과 같이 특정 열의 에너지를 가하지 않는 이상, 다시 뜨거워질 수 없는 그런 열의 성질과 시간의 성질이 같다고 표현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가 전해준 시간의 속성과 모든 만물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병합해보면 꽤나 재미있는 상상거리가 만들어진다. 가령,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하다 보면 사람에게 속해있는 기운이라는 에너지가 언어와 음성의 성질의 에너지로 변화하여 다른 이에게 전달되고 이 에너지는 그 사람에게 흡수된다.


이런 에너지의 성질 변화에 따른 전이상태를 간단히 표현해보면 이렇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특정인에게 지식에너지를 습득받고 이 흡수된 지식에너지는 그 사람의 성질과 형태를 변경해주기도 한다. 간혹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금의 나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어떠한 깨달음과 동기부여 등의 내면의 감정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난 책을 통해 이것이 바로 특정 에너지가 전이되거나 흡수되어 나타나는 사실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간혹 부자들을 만나거나 석학들을 만나게 되면 본인과 유사한 지적 수준 혹은 더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존재와 대화 혹은 열띤 토론을 통해 특정한 깨달음을 얻거나 감정의 변화를 느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일화를 적잖게 경험한다. 이것이 곧 타인을 통해 얻어진 에너지의 힘이자 그 에너지가 삶을 바꿔나가는 동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미뤄볼 때 이것도 하나의 깨달음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나는 에너지를 믿는다. 사람에게 속해있는 기운과 책을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지식을 하나의 에너지로 생각하며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애쓰려고 한다. 미약하지만 차츰 얻어진 그 에너지가 내면의 나의 감정을 동요시키고 나의 사소한 생활습관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굳게 믿고 있다. 또한 모든 만물을 죽은 존재로 보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특정한 에너지를 보유한 귀한 존재로 여기기로 했다. 그것이 흔하디 흔한 돌덩이에 불과하더라도 수억 겁의 시간을 견디어낸 견딤의 에너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단순한 생각의 변화가 내 인생의 큰 변화를 있게 할 수도 있겠다는 에너지의 가능성을 맹신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트랜서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