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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Jan 20. 2021

이제 그만.

제발 그만

코로나가 우리를 덮친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한창 해부 예습을 하고 있던 중, 중국 우한 발 폐렴이 국내로 유입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냥 여느때처럼 그러려니 했다. 메르스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 있지 않아서 흔한 정치 기사처럼 사라질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정말 1년이 다 되어간다.


2월 중, 해부 실습을 진행하던 어느날 학교 앞 카페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일 확진자와 같은 시간에 해당 카페를 방문할까 고민했었던, 그리고 결국 집에서 공부한 나를 칭찬하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단순히 불편한 감기정도의 인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KF-94 마스크는 커녕 KF-80도 약국에서 구할 수 없었고, 다행히 어머니의 혜안으로 미리 구매해둔 마스크 100여장에 안심하며 끼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때까지도 그게 전부였다.


해부가 끝나고 조발신이 시작했다. 아니다. 그 전에 확진자 일 천 명대를 기록하며 학교는 2주간 잠정 휴강에 들어갔다. 마냥 좋았다. 심신은 너무 지쳤고, 회복할 기회라 생각했었다. 곧 잦아들거라 생각했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짧게 조발신이 스쳐지나가고 생화학, 생리학, 면역학이 그 자리를 채웠을 때, 세상은 낙관적이었다. 일 평균 확진자 10명 전후를 오가는 그래프를 보면, 곧 상수함수로 마무리될거라는 어설픈 기대가 있었다. 대통령이 김칫국을 마신것도 이때쯤이었나.


방학 이후 확진자는 또 한번 치솟았다 내려갔다. 공공의대 설립, 의사 파업 등의 이슈의 한가운데에서 휩쓸리느라 정신 없던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이제 마스크는 너무 익숙해졌고, 길거리에 턱스크, 혹은 코만 내놓고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면 별로 쓸데도 없는 그 머리를 손수 깨주고 싶었다. 이왕이면 대깨문도 직접.


그렇게 두 번의 임상 과목이 지나간 후, 종강이 찾아왔을때, 주변은 코로나로 멍들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코로나와 큰 관계 없는 직종이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었다. 학교 앞 복싱장 관장님은 매번 수강일이 연장되었다는 문자를 보내셔야했고, 학교 주변에 PT를 끊어둔 친구들은 모두 환불을 받고 있었다. 대학가의 풍경은 불과 몇개월전과는 완전히 달라졌고, 사람으로 가득찼던 거리는 아 아니다, 아직도 가득차더라. 술집에 그득하게 차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핀셋 방역으로 꼬집힌 체육시설 관장님들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집에 안주를 포장하러 들어갔을때, 그 안에 마스크는 커녕 다닥다닥 붙어앉아 소리 지르는 학생들을 바라볼때 관장님들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그들을 기만하고, 편가르는 정부를 바라보며 또 다시 무력한 분노에 휩싸였다.


모든게 지긋지긋했다. 내가 비상식적인건가. 내가 공감 능력이 과한건가. 혹은 너무 부족한가. 내가 너무나 멍청한가, 아니면 대중에 비해 너무 과한 도덕심인가. 왜 대통령은, 정부는, 여당은, 야당은, 경찰은, 검찰은, 대중은 그 어떤 것도 상식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 한파에 손이 곱은 선별진료소의 의료진들에게 폭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의 댓글만 보면 우리나라에 그런 병신은 없어야했다. 막상 본인들 일이 되면 그렇게 되는건가. 이 와중에 끊임없이 나오는 국시 관련 이야기, 형평성? 공정성? 그런 지긋지긋한 프레임을 씌우며 모든 잘못을 그들로 몰아가는 정부의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와중에 어떤 년은 부정입학하여 의사까지 되었더라. 빌어먹을 대깨문 새끼들.


그렇게 또 한번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 이 나라에서 의사를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마주하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곳에서 탈출구를 찾았고, 다시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또 음악 들으러 들어간 유투브에서 닥터프렌즈의 글을 보았다.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그 필력에 화가 녹아내렸다. 그리고 설움이 차올랐다. 우리 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님들이 생각났다. 강의 시작하시면서, '어제 2시간 잤습니다. 분위기가 쳐져도 이해해주세요', '(증명사진을 보여주시며)예전에는 이렇게 생겼는데, (방역복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시며) 요즘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라고 말씀해주시던 교수님들이 떠올랐다. 인스타에  'nasal hunter'라고 올리던 인턴, 레지던트 선배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의사1,2였겠지만 그들은 우리의 친숙한 선배이자, 스승이다.


그들이 누구보다 희생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누구보다 헌신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인격이 남들보다 존경받을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이 지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더 이상 그들이 정치적인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그들을, 우리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언론에 더이상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격무에 시달리는 그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편히 진료할 수 있도록, 치료할 수 있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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