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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Sep 06. 2022

난 아니라고 할래

나는 가끔  오만하다. 아니 자주 오만   하다.

어찌 아느냐고?


종종 나와는 다른 누군가를 깔아 내려보는 경향이 스스로 감지되곤 한다.

어떤 작품에  대해 뭔가를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비평을 할 만큼 자세히 들여다 본 것도 아니면서 내심 비웃곤 한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난 조금 더 빈번히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이 보는 나는 어떨까. 오만한 사람을 마주할 때 나는 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들이 정말로 어리석은 것인지 그저 내 생각에서만 그렇게 비춰진 것일지 나는 모른다. 그저 많은 경우 멍청해 보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에 내 자신 또한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이 질문의 핵심은 '그들의 눈'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하고있는 것인지 아닌지에 있다.


내가 느끼곤 하는 부조리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어리석은, 치기어린 일일까.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생각하려나.


정말 나는 어리석은 불평쟁이에, 긁어부스럼,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인가.

내 답은 아니다 이다.

모두가 '그렇다'라고 해도 내 스스로에게는 '아니다' 이다.


나는 분명히 느끼고있다. 그 전에도 분명히 사람들은 이리저리 휩쓸렸지만

스마트폰이라는 간편한 악마의 구원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권위있는 정보에 휩쓸리기 쉬워진 사람들이 보인다. 개미와 바퀴벌레 보다도 훌륭한 번식력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들을 모으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살아가며 자신들의 영웅이 뿌려주는 정보를 소비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라인에 넘치고 넘치는 쇼츠 영상과 오락거리, 혹은 말하는 이의 위치성과 내러티브를 거세한 듯한 곳에 자리잡은 '위로'에 빨대를 꽂아넣고 흡수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 이게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하겠지만) 유튜브 조회수 대박 방법, 주식 혹은 부동산에 관한 단편적인 이익 경험에 시선과 영혼을 빼앗긴다.


삶은 원래 이런 것인가. 삶은 원래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하면 내 대답은 언제까지나 아니다 일 것이다.


시선 뻬앗기지 말고, 내가 보려는 것을 더 깊숙히 바라보자. 내가 깔보는 사회에 지지 않으면서. 적당히  어울려 놀아주기도 하면서, 그런 날에는 집에서 일기장을 펴 내 자신을 가다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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