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규칙이 변한다면
서기 2172년 6월 30일, 1992년에 태어났다는 박 노인은 180살 생일을 맞음으로써 전세계 최고령자의, 어딘지 곰팡내나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작년까지 함께 시덥잖은 인생을 논하며 화투를 치던 동갑내기인 앙 마리 노인과도 사별한 뒤, 세계에서 유일한 생존해있는 180세 노인으로 자리잡았다. 자리잡았다는 말은 왠지 웃기지만, 그러니까 180세 노인이 됐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유일한 180세 박 노인의 생일을 축하 하며 삶의 경험과 지혜를 엿보는 짤막한 뉴스 속의 다큐 시간이었다.
1992년에 태어나 2172년 현재 까지 살아오며 가장 즐거우셨던 추억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답을 하려던 박 노인은 헐렁해져 자꾸 잇몸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틀니를 고정시키려고 이를 딱 소리 나도록 앙 다물었고, 그의 마모된 턱뼈로는 다시 입을 벌리기 까지 얼마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박 노인이 턱 부터 목 까지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있는 잔 근육을 생중계로 내보내는, 박 노인의 턱을 벌리기 위한 짧은 사투가 있던 찰나에, 세상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박 노인의 턱이 돌아옴과 동시에 박 노인은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이 고물 턱이 내 삶에서 가져간 시간이 모르긴 몰라도 몇 개월은 될거에요. 진짜로 그럴거에요. 하면서 턱을 매만지자 방송을 촬영하던 스태프들도, 점잖은 앵커들도, 심지어 방송을 보고 있던 뭇 노인들도 턱을 매만지며 어련히 그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껄껄댔다.
방송국에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모두의 웃음 소리가 잦아들었을 즈음이었다.
뉴스실로 걸려온 전화는 방송국 전체에 한바탕 파란을 일으켰다. 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으며,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소란스레 들려왔다. 보조 PD에게 전달 받은 녹음본을 들어 본 담당 PD는 곧바로 녹음을 생방송에 내보냈고 스튜디오엔 다급한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전 세계로 송출되던 생방송 프로그램의 파장은 지구의 중력 만큼 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