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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Aug 08. 2023

2. 지민

_2053년,


"지민아 우리 서울에서 뭐 하는 거냐, 우리 제주 가서 살자."

지민과 가깝다면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룸메이자 쌍둥이 형제인 강민이 한 말이었다.

"넌 어디 코딱지만 한 목공방에라도 취직할 수 있지 거기서 난 뭐 하라고."

강민은 목수였고, 지민은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제주 돌아가기 싫어?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건 제주에서도 다 할 수 있어." 강민은 설득이라기보다는 훈계하듯 말했다.


제주에 관한 주제가 언급될 때면 지민은 헤드폰을 눌러쓰고 뒤돌아 대본이나 게임에 몰두했다.

강민은 고작 몇 분 차이로 일찍 세상에 나왔지만 동생을 잘 보살피며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혹은 부채감 같은 것에 늘 메여있었다.


무형문화재로 등록까지 된 무당의 자식으로서, 그러기 이전에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고, 물론 두 아들의 삶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걸 또 강민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종용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였다.


"강민아 그만 좀 하자. 난 다 됐고 제발 그 존나 유령처럼 쫓아다니는 얘기 그만했으면 좋겠다."

"형한테 강민아가 뭐냐 철부지 새끼야."

"길어봤자 5분 먼저 나온 거 가지고 진짜 졸라 삐댄다. 뭐라 해도 난 제주 안 가. 엄마처럼 신 뒤꽁무니 쫓기 싫어. 신이 뭐길래 시발"

지민은 대차게 울화통을 터트리는 듯했지만 제일 마지막 문장을 뱉을 때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넋두리하듯 했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설득하고 유도해 봐도 제주에 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지민을 어르고 달래 숨 막히는 서울에서 벗어나는 여행으로써 제주에 들른 것은. 차량 렌트 비용도. 운전도 모두 강민이 하겠다고 자처했다. 그냥 지민이 너는 바람이나 쐬고 즐기다 오라고. 하지만 글을 이쯤 읽은 분들은 모두 알다시피 아무리 형제지간이라 해도 무언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건 네는 건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지민은 무당과 굿, 영적 체험 같은 것을 어려서부터 숱하게 체험해 왔다.

제주 영등굿 무형문화재로까지 습득한 어머니는 이미 일찍이 지민의 예사롭지 않은 신기를 알아봤고, 아직 구구단도 채 외우지 못할 때부터 갖가지 굿에 필요한 연극적 형식과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을 기른 것이다.

길렀다기보다 강화했다는 말이 어울리겠다.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들의 신기를 여기저기 선보이며 이미 줄어들고 있던 자신의 신기를 가리려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지민은 이미 지긋지긋했다. 아직 강민과 지민이 아직 안덕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찬란하게 반짝이며 빛나는 바다에 빠져 천방지축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어머니의 영험한 손에 이끌려 신당으로 향하던 지민의 처진 어깨를 강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민이 지민을 제주로 이끄려 하는 이유는 그 영험하기로 명성을 떨치던 자신들의 어멍(어머니)이 눈을 감기 전에 했던 말 때문이다.


"강민이, 지민이 느이는 제주에 있어야 해. 제주에서 벗어나고 해가 흐를수록 점점 안 좋아질 거인 게."

제주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설령 그게 언제나 딱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할지라도 삼촌들의 말을 듣자 하니, 정확하진 않지만 평균을 따진다면 7할 이상의 확률로 맞아떨어지곤 한다는 것이었다.

무형문화재에 등재, 7할 이상이 맞아떨어진다는 예측 같은 소문이 더해지자 사람들은 어머니가 뱉는 말이라면 그 당위여부, 사실여부를 떠나서 머릿속에서 자신들 나름의 정답을 만들어 끼워 맞추곤 했다.


지민은 그걸 못 견뎌했다. 못 견뎌하기만 했다면 다행이지만 지민의 참을성은 십 대 중반을 넘기지 못했다.

지민이 평생토록 모은 거대한 돼지 저금통을 깨고 집에서 뛰쳐나간 걸 알아챈 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였다.

어머니와 강민은 함께 주변 곳곳을 이 잡듯 뒤졌고, 지민의 일기장에서 서울을 향한 동경을 알아채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아직 비행기를 타지 못한 지민이 거기 있었다.

지민은 외국에서 온 듯한 한 여자애와 함께 발견됐다.


"전광판에서 서울 가는 비행기 찾고 있었는데, 막 내려서 도착한 것 같고 영어도 한국어도 못하고 사람들한테 길 물어보길래 얘기하다가 알게 됐어. 타일랜드에서 왔대."

"사와디캅- @#이화."


태국에서 왔다는 이화는 이런저런 말을 하며 자신을 소개했지만, 모두들 이름을 제외한 무엇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민의 어머니는 두 형제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 조그만 이화를 내려다봤다.

태국에서부터 가져온 듯한 검은색 토끼인형을 손에 든 이화는 다소 삐딱한 자세로 두 형제의 어머니를 올려봤다.

한참을 그렇게 마주 보다 어머니 쪽에서 먼저 침묵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화, 핸드."

하며 어머니는 손을 달라는 듯 손바닥을 흔들었고 다소 놀라운 듯한,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이화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살이 두둑한 어머니의 손에 잡힌 이화의 손은 아주 가냘펐지만, 이화의 눈만은 어떤 사람 보다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그때 어머니가 이화에게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떤 느낌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날 어머니는 이화에게 말했다.

"먼 시간을 돌아왔구나. 먼 시간을.. 갈치조림 먹으련?"


강민과 지민은 영문을 모른 채 아리송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지만 그저 태국이 아주 먼 곳인가 보구나 싶을 뿐이었고, 아무 때나 먹지 않는 갈치조림을 먹는 것에 신이 날 뿐이었다. 지민은 애써 탈출하려 했던 서울로 가지 못해 석연치 않았지만 입에서 살살 녹는 갈치들을 먹으며 심란함도 함께 용해되는 듯했다. 게다가 이젠 새로운 이방인 친구까지 곁에 있다. 단발머리를 한 이화는 미소가 예쁜 초코송이 같았다. 어머니는 그런 지민을 벌써 눈치챈 것인지, 내일부턴 이화와 함께 홈스쿨링을 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물론 이화도 좋든 싫든 거절할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싫은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는 불호령과도 같았다. 애초에 지민이 도망을 시도한 것도 도저히 거스르기 힘든 어머니의 말과 관련이 깊었으니까.

강민은 어머니의 말을 아주 잘 따랐다. 이따금 어머니가 강민만 따로 불러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강민은 그저 어머니의 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행하곤 했으니까.


어머니와 지민, 이화가 함께하는 홈스쿨링은 별거 없이 흘러갔다. 어머니가 굿을 다녀올 때면 제례에 쓰이는 그릇과 도마, 칼, 종 같은 것들을 닦고 다듬는 일을 하기도, 알 수 없는 내용의 만트라를 암송하기도, 혹은 경전을 외우기도 했다. 지민은 자라는 동안 줄곧 봐왔던 것들임에도 쉽지 않아 했지만 이화는 곧잘 따라 하곤 했다. 마치 이화가 이 집에 살고 있었고, 지민 자신이 태국에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지민과 이화는 조금은 특별한(?) 홈스쿨링에 익숙해지며 점점 무당으로써의 면모를 익혀가고 있었고,

강민은 대입 준비를 하던 즈음의 일이었다.


새벽 늦게까지 이화가 신당에 남아 할멈신령님께 점점 가라앉는 제주의 해수면에 대한 기도를 드리겠다던 중이었다. 지민은 일찍이 강민과 같이 쓰는 방으로 들어와 코를 골고 있었고, 강민은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때마침 마라도로 굿을 하러 떠난 참이었다.


강민이 말하기를,

그날 새벽은 유독 몹시 고요했다고 했다. 시종 바람이 불어대 바람 잘 날 없었는데도 그날따라 신당에서 기도문을 암송하는 이화의 소리가 잘 들렸다고 했다.

수학의 정석에 열중하던 강민이 기지개를 켜며 잠시 숨을 돌릴 때, 계속해 귓가에서 돌아다니던 이화의 암송 소리가 멈춘 걸 느꼈단다. 아, 이제 끝내고 자러 가는구나 싶었다고. 그런데 신당의 호롱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고. 이상하다. 이화가 저 불을 켜놓고 신당에서 나간 일이 없는데. 그 무렵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언제나 불어오는 제주의 바람이지만 그때만큼은 너무도 낯선 바람처럼 느껴졌다고,

알 수 없음이 가져오는 묘한 긴장을 느끼던 강민은 이내 다시 문제풀이에 집중했다고 한다.

두번째 문제를 다 풀어갈 때쯤, 강민은 생생한 이화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고 했다.

이화는 어떤 대상에게 평소엔 입에도 대지 않던 쌍욕을 하며 악을 썼고 고함을 쳤다고 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마치 개 혹은 늑대가 토악질을 하며 울부짖듯, 아주 크고 긴 울음 소리를 냈다고 했다. 신당 너머로 비치는 그림자는 분명 이화였는데, 그 소리는 도저히 이화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고.


그날 밤 이후 이화는 사라졌던 것이다.

어머니가 악성 종양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 부터였고, 어머니가 지민을 본영이라고 칭하던 것도 그 즈음 부터였다.

"본영아, 넌 본영이다. 본영아, 잘 살아서 지켜다오" 하는 말을 거듭 해댔다.

아마 악성종양의 고통으로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것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강민과 지민은 내심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어머니가 한 말은 보통 말이 아니란 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남아있던 신당과 땅을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가 꿈을 쫓고, 사업을 하려던 게 나락으로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돈이 있으며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은 죄였다. 강민과 지민은 그 벌을 받은 것이었고,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됐다.


강민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제주를 떠나 살아갈 생각 하지마라, 계속 안좋아질 것이니'

라던 말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조깅하듯 돌아다니는 걸 매 순간 느꼈지만, 계속 부정해왔다. 그러나 서울의 삶은 나락 그 자체였다.


어느새 어머니의 5주기가 지났을 무렵, 강민은 지민을 본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본영을 제주로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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