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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는 그만두고 애 공부 봐줘야 할 것 같아

니가 가라 하와이

by 룰루박

“우리 둘 중 하나는 일을 그만두고 뿡뿡이 공부 봐줘야 할 것 같아."


신랑은 심란한 표정이었다.

내가 취소할 수 없는 미팅 때문에 회사를 잠시 다녀온 사이 뿡뿡이가 원격수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엔간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뿡뿡이 기초학습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 연필도 이상하게 쥐고 획순은 다 틀리고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하고 뺄셈은 아직도 손가락을 사용해”


나는 밥을 먹던 숟가락을 아직 입에서 빼지도 못한 채 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응. 난 그걸 작년부터 느꼈어”


뿡뿡이의 그럼 모습을 보고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실제 뿡뿡이가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신랑이 대뜸 묻는다.

“그래서 넌 뭘 했는데?”


순간 당황스러운 열이 속에서부터 올라오며 그동안 내가 뿡뿡이에게 했던 일들을 나열하는데 다소 황망한 느낌이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보니 신랑은 낮동안 뿡뿡이를 보니라 늦어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귀신같이 스르륵 다가가서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사과받아야겠어. 작년에 이직한 뒤 내가 뿡뿡이에게 쏟았던 에너지와 정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아까 “그래서 넌 뭘 했는데”에 대한 질문이 굉장히 기분 나빴어”


신랑은 기계적으로 (일부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좌우로 돌리더니 “그건 실제 그래서 네가 무엇을 했느냐는 데이터를 요청하는 질문이었어” 란다.


“내가 느낀 건 순수하데 데이터를 물어본 게 아니라 넌 대체 뭘 한 거냐의 비난이었어. 톤 앤 매너가 정말 달랐다고”라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랬더니 신랑은 1초 만에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또 부부싸움의 클리쉐를 완성하듯 물었다.


“뭐가 미안한데”

그랬더니 또 기계처럼 말한다

“비난하는 투의 톤 앤 매너처럼 말해서 미안해”


날로 현명해지는 사람. 그나저나 뉴스에서 말하던 기초학력 양극화에서 저 밑 끝에 있는 아이가 뿡뿡이라니...


자기 직전에 내가 시골에 사는 뿡뿡이 외할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그것만으로 너무 감사하고 귀엽고 그런 조부모의 심정이 내일도 지속되기를


뿡뿡이 : 여기서 뿡뿡이는 9살 남자 아이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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