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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여자인 나와 너무 다른 아이

수영장에서 만난 또 다른 나의 모습

by 룰루박

체크 아웃은 오전 11시였다. 체크 아웃 전, 30분만 놀기로 약속하고 호텔 수영장에 들어섰다. 예준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1명과 자매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아이들이 이미 풀장에서 놀고 있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장소보다 놀이 메이트가 더 중요한 예준이었기에 우리보다 먼저 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안도감과 반가움이 <사회적 거리 두기>보다 더 먼저 떠올랐다.


살결이 워낙 까무잡잡한 아이는 마치 오랜만에 물 만난 검은 물개같이 즐겁게 수영을 하기 시작했고 이미 풀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풀장에 들어간 지 30초 정도 지났을까?


00아 하지 마, 조심해


<조심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나는 책에 고정했던 시선을 거둬 풀장 속 예준이를 찾았다. 책을 보다 풀장을 보기까지 불과 몇 초,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분명 예준이가 또 다른 친구에게 들이대다가 실수하거나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했을 거라 반사적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준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부모가 내 옆에 앉아있다가 안절부절못하더니 풀장 옆으로 바짝 다가가 자신의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소리였다. 주의를 주고 돌아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오던 길,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의 찡그리지도 또 웃고 있지도 않은 표정과 불안한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저 남자아이, 예준이와 비슷한 타입이구나.


그제서부터 나는 그 남자아이와 예준이를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자세가 되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예준이와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상대 방에게 뻗어댔다. 아마 물속 저항이 덜했거나 0.5mm만큼만 붙어있었더라면 분명히 서로의 발길질에 한 대씩 맞아떨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렇게 놀다 보니 물보라가 엄청 솟구쳤고 과격한 남자 아이 둘 옆에서 손가락으로 물 위를 피아노 치듯 놀던 여자아이 둘에게 엄청난 물폭탄이 쏟아졌다.


연보랏빛 페도라 같은 수영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 아이가 물폭탄을 맞고 '아!' 소리를 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예준아!" 부르려고 입을 벌리는데 글쎄 옆에 앉아있다고 생각했던 남자아이 엄마가 번개처럼 풀장 옆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00아, 저쪽 여자애들하고 제일 떨어진 저쪽 끝으로 가서 놀아, 물총으로 얼굴 쏘지 마, 과격하게 놀지마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 아이 엄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예준이를 부르려던 입을 다물고 대신 잔소리를 듣고 있는 남자아이의 표정을 관찰했다. 누가 보더라도 엄마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오래전 내가 하던 말을 들으며 눈에 초점이 사라진 예준이가 떠올라 순간 실제로 실소가 입가에 걸렸다.


그 이후로도 계속 그 엄마는 풀장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심정이 꽤 복잡미묘해졌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한도 안에서 자신의 아이가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굴뚝같은 심정이 고스란히 읽혔지만 자신의 아이가 내 통제밖으로 계속 벗어나는 느낌. 그래서 또 다시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니 그 모든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마음.


그 엄마와 나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그 엄마의 속마음을 읽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꽤 씁쓸해졌다. 실제로 자주 짓궂은 짓을 벌이지만 무조건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은 정도인데 꽤 많이 걱정하고 있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닌 벌어질 것 같은 일로 계속 주의를 주고 있구나.


마음대로 추측한 그 엄마의 심정과는 별개로 나는 한편으로 나는 예준이가 자신과 비슷한 아이 (즉, 또래 관심을 끌려고 너무 익살스럽거나 혹은 과격하거나 또 혹은 너무 짓궂은 아이)와 놀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과격한 두녀석이 놀다 다치면 서로 그려려니 할 수 있을 것 같은 속편한 마음이 지레 들어서였을까?


아마, 태어나기를 워낙 조심성이 많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풀장에서 물 위에 손가락으로 피아노치듯 살포시 노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이런 고민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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