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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뻔뻔해지세요.

첫 출근 전, 내가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뻔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by 룰루박

결혼 후 바로 육아가 시작되었고 올해 워킹맘 10년 차로 접어들었다. 명함이 없이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늘 곤혹스러웠다. 이직이 잦았고 커리어에는 일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 중, 첫 출근 전에 알고 있었더라면 한 직장에서 조금 더 오래 일할 수 있었을까? 그럼 자기소개가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똑 부러지게 일하네.”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 나의 존재가 조금 더 의미 있어진다는 생각이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결혼 전, 나는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나를 갈아 넣는 일이 당연시했다.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결혼 전 습관처럼 열정적으로 나를 갈아 넣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남편과 큰 싸움이 나거나 아이의 이상 행동이 눈에 밟혔다. 그럴 때, 일을 조절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나의 능력이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꽤 자주 들었다. 한 곳에 전력 질주하며 마음만 먹은 시점에 마음먹은 분량만큼 집중할 수 있는 주변 미혼 여성들이 부럽기도 했다.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이 자주 들기 시작한다.


남편과 싸우고 회사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도 안 끝난 일을, 노트북과 함께 싸매고 집에 퇴근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정쩡한 상태가 익숙해지지는 날도 있었다.

코로나 전에도 간헐적 재택이 필요했던 나는 워커홀릭 미혼 투성인 스타트업 세계에서 혹시 민폐가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자주 들기도 했다. 그럴 땐 돈을 써보기도 했다. 청소 이모님을 모셔보기도 했고, 아이 식사를 챙겨주는 이모님을 모셔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직장 동료에게 나의 뒷마무리를 부탁하며 퇴근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힘들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너무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입을 떼어 “이 뒷부분만 부탁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하던 날이었다.

소리 없이 입만 뻐끔거리면서 고개만 까닥하고 사무실을 나왔었다. 마음이 불편해 실시간으로 슬랙을 들여다보는 것만 빼면 나의 가정은 평화로웠고 일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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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가 터지고, 긴급 돌봄 교실에서도 급식이 중단되었는데 아이 도시락을 미처 싸지 못한 날이었다. 텅 빈 냉장고 안에는 식은 밥과 김치 그리고 당근과 양파 반쪽 정도의 자질구레한 재료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가 백종원이라도 되면, 고작 당근 양파 그리고 김치를 가지고 멋진 반찬을 만들 텐데,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난감했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고 아이에게는 소형 마스크를 씌어주고,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넓고 두꺼운 마스크를 얼굴에 덮어쓴 다음, 집 앞 편의점으로 갔다. 1,300원짜리 참치마요 삼각김밥 한 개와 삼다수 물 한 개, 그리고 나의 죄책감을 무마시키고 싶은 아이셔 껌 한 통을 사서 가방에 넣어주던 날이었다.


2,300원입니다.라는 편의점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드를 결제기에 꼽아 넣고 빼면서 아이의 정수리만 쳐다보던 그 찰나, 그리고 뒷 마무리를 부탁하고 사무실을 나오던 그 날의 느낌이 기억났다.


‘그래 내일은 정성스러운 도시락 싸주지 뭐’ 라며 아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내 몰래 아이셔 껌을 주머니에서 까서 입에 쏙 넣고 맛있게 씹으며 뒷걸음치며 나에게 잘 가라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날 저녁 칼퇴를 하고 공들여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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