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기이하고 유쾌한 베트남 여행
<무질서 속의 질서>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이국적”이라는 뜻은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특징적인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베트남에서 가장 이국적이라 생각했던 풍경은 8차선 도로에 가득 찬 오토바이 부대가 이리저리 자동차와 버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다. 여기에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오토바이 수십대 사이로 길을 건너던 행인들을 봤을 땐, “와우!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목격한 베트남의 도로는 마치 고등학교 시절 나의 책상 서랍 같다는 생각도 했다. 외부인이 얼핏 보기엔, 혼돈이지만 나만이 아는 질서가 존재하는 공간이란 점에서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속했던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환경도 떠올랐다. ‘기세’나 ‘눈치’같이 절대 명문화될 수 없는 형태의 교통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경적이 꽤 여기저기 많이 울렸는데, 한국과 달리 이곳의 경적은 깜빡이 대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화단 때문에 뚝 끊긴 횡단보도에 심지어 신호등이 없는 8차선 도로를 건너보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차도를 건너는 개구리 게임 속 개구리가 된 느낌이 들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 경험하기, 그리고 나를 부끄러워하는 아이>
구글 지도에 15분 정도만 걸으면 목적지라며, 택시 말고 그냥 걷자는 말에 있는 짜증을 다 쏟아내는 아이 었다. 얘가 왜 이렇게 짜증일까, 싶어 얼굴을 노려보려고 하던 찰나, 콧등과 인중에 맺힌 땀방울이 보였다. 너한테는 이렇게 덥고 습한 곳을 15분 동안 걷는 게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단숨에 공감되어 그랩 앱을 켰다. 왜인지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언제 잡힐지 모르는 택시를 기다리는 데 아이가 눈치가 보였다. 택시가 잘 잡히는 곳으로 조금 움직여보자며 체감상 1시간이 넘는 듯한 3분 정도를 걸어가는데 저 앞에 그랩 오토바이가 보였다.
“오토바이 타자 예준아”라고 말하자마자 순간, 애를 데리고 너무 위험한 짓을 하나?라고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헤이! 투 피플! 오케이?”를 외쳐 라이더를 불렀다.
한 여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을 내가 타고 있던 택시 바로 옆 5센티미터 거리 정도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와 택시 거리가 너무 짧아서 여성분이 걱정돼서 계속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여성분의 복장이 너무 신기해서 뜯어보게 되었다. 졸라맨인지 히잡인지 구분이 안 되는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는 아래 빤짝거리는 뾰족구두를 신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을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지금은 잘 해석이 안되지만, 나중에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인상에 남았는지 해석해봐야겠지 싶기도 해서 여성분의 옆모습을 찍었다. 그러자 옆에서 예준이가 골 이난 목소리로 외친다.
“엄마 불법 촬영이야. 창피해”
얘기를 듣고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불법 촬영에 대한 교육을 참 단단히 하고 있다는 깨달음과 이제 아이가 나를 부끄러워할 수 있을 정도로 컸구나.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너무 대견했다.
<사람 손보다 비싼 물티슈>
식당에 도착해, 테이블에 놓인 물티슈를 보고 자연스럽게 뜯으려 하던 참이었다. 옆에 있던 지인분이 물티슈는 유료라고 첨언했다. 그 말을 듣고 돈을 받으려면 미리 알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불쾌감이 올라왔다. 오래전, 일본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빵을 한국의 식전빵 같은 녀석이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먹고 나서야, 나중에 영수증을 통해 유료 빵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경험이 떠올랐다. 가지런히 사람 수대로 컷팅되어 나온 빵이 알고 보니 유료였다니, 눈뜨고 코베인 듯 한 기분에 한동안 어이없고 기분이 나빴던 것이 사실이다. 은근히 구매를 강요당했다는 불쾌감이 들어서였는데, 이곳 베트남 식당에서 테이블에 무심하게 놓인 물티슈 봉지가 유료라는 것과 과거 일본에서의 유료 빵 맥락이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물티슈 그까이것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심술이 생겨 챙겨간 가방 속 개인 휴대용 물티슈를 꺼내 아이 손을 닦아주었다. 그 찰나에 주문한 우리가 주문한 반쎄오, (which is 노란 쌀가루 반죽에 숙주와 기타 등등의 채소를 넣어 크래프처럼 얇게 부친 베트남 음식) 나왔다. 동행한 지인분이 직원에게 요청하면 먹기 좋게 싸서 준다며, 세련되게 직원을 불러 싸 달라고 요청했다. 20대로 보이는 베트남 여직원이 우리 테이블로 와서는 일회용 장갑을 끼고는 노란 쌀가루 반죽과, 고수, 그리고 야채 등을 하나씩 성심껏 싸서 각 사람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과거 몇 분 전, 유료 물티슈 때문에 내가 느꼈던 불쾌감과, 여직원분이 내 앞접시에 반쎄오를 고이 접어 놔 주는 상황이 너무 황송해 “땡큐”를 번복하는 현재의 내가 기묘하게 충돌했다. 여직원이 싸준 반쎄오는 세상 이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맛있었는데, 그와 별개로 내가 당시 느꼈던 기이함이 뭔지 동시에 곰곰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찰나, 우연히 베트남 사람들의 평균 월급 수준을 듣게 되었다. 나에게 반쎄오를 싸주던 직군, 레스토랑 서버나 일반 서비스 직종의 경우, 한 달에 25만 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베트남 직원의 한 달 평균 월급을 듣고서야 비로소 내가 앞서 느꼈던 기묘함 혹은 기이함의 본질을 깨닫는다.
이곳 베트남은 공산품보다 인건비가 싼 나라구나. 한국의 경우, 사람을 대신에 키오스크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곳 베트남은 사람의 손이 가장 저렴하구나. 이걸 깨닫는 순간 내가 묵고 있던 호텔의 수영장에서 감자튀김을 시켜먹고 다 먹은 접시를 어디에 반환할지 물어봤을 때, 당황하며 내가 누워있었던 선베드 옆에 그대로 놔두라 황망해하던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영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타월을 가져다주던 선하게 생긴 베트남 청년의 표정도 떠올랐다. 또 동시에 나에게 마담이라 부르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타올로 내 발을 닦아주던 마사지샵 직원의 정수리도 떠올랐다.
사람 손이 가장 저렴하니, 모든 변수에 사람으로 대응할 수 있고, 그러니 자동화나 시스템을 만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찌 보면 그래서 여기 베트남에서 모든 일들이 꽤 휘뚜루마뚜루 진행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뉴얼대로 진행되지 않고, 하나하나 변수에 사람 노동력을 투여하니 가끔 우기면 해결되는 일이 있기도 하겠구나 하는 느낌 같은 느낌.
내가 만나고 얘기했던 모든 업소의 직원들은 죄다 20대였다는 사실과 오토바이 한 대에 앞뒤로 아이 둘 싹을 태워 달리던, 성인 한 명에 애들 4명이 타고 8차선 도로를 달리던 베트남 아무개 현지인이 떠올랐다. 출간된 논문 하나 읽지 않고, 고작 3박 4일간 일정이라 매우 얕은 감상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미래가 밝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