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by 투명구름

자주 가는 동대문 종합시장 근처에 전태일 동상이 있다.

그분이 노동운동 하시던 그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을까?

최근에 과로로 사망한 한 청년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나는 최근 내가 근무했던 회사가 떠올랐다.


일주일에 10시간을 못 자고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런 업무량으로는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없다며 상급자에게 조정해 줄 것을 세 번에 걸쳐서 건의했으나 그는 업무 분장도 인원 충원도 하지 않고 그냥 조금 더 버텨보라고만 말했다.

나도 24시간 금식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베트남으로 보내야 하는 물류 픽업이 오는데 점심시간은 최고로 바빠서 절대로 그 시간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바쁜 게 끝나면 더 바쁜 일이 몰려오던 회사였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쓰러져 자다 몇 시간 만에 또 출근을 해야 했다. 이 상황이 부당한 것인지 합리적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바쁜 상황이 나를 가스라이팅하기 바빴다. 그 청년이 바빠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일했다는 친구와 나눈 톡을 보며 나는 왜 세상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그저 양심적인 사장을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사회의 시스템이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해주지 않는 회사에 불가피하게 들어갔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입사 전에 그런 걸 알 수 있긴 할까?


나는 결국 그 회사를 반년도 못 다니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렇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 있다고 믿는다.

기업의 발전과 성과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결과 아래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아직도 여전히 노오력을 강요받고 있는지 화가 난다. 과연 개선될 여지가 있긴 할까?

퇴사 후 나는 꽤 긴 시간 수면과 식이에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를 나와서 제일 처음 한 말은 “이제 잘 수 있겠다."였다. 그 시절 하루에 약 100KM 운전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매번 졸렸던 기억이 있다. 그땐 어딜 가든 어디에 있든 내내 졸렸다.


지금 나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번다.

지금의 생활이 전적으로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얼마나 명료하게 간단한 행복인가?

더 이상 과로로 노동자가 뉴스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과나 결과를 축하하기 전에 그 안에 어떤 공정한 과정이 있었는지도 반드시 지켜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스스로를 함께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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