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상담이었다.
늘 대기 환자가 있던 그곳에 앞뒤로 환자가 없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넉넉히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 마지막 상담을 이어가셨다. 두 달 동안의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비상약을 먹었던 어떤 밤을 이야기했다. 섣부른 충고와 섣부른 고백에 대하여 전문가(?)의 소견을 들었고, 건강검진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의 불안과 나의 걱정을 들은 선생님은 살면서 늘 걱정이 반복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재회에 대하여 늘 긍정적이던 선생님은 이제야 비로소 그 문제는 아마도 개인이 해결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 그 죄책감에서 이제 벗어나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직 젊으니 누군가를 만나겠다는 마음을 접지 말라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셨다.
겨울이 오는 게 조금 두렵다는 나에게 지금처럼 열심히 따뜻한 햇볕아래 걸으라고 하셨다. 다시 조금 우울해지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일하지 않는 남은 시간들엔 뭘 하냐고 물으셨고 "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체력이 안되어 못한다"는 내 대답에 조금 안도하셔서, 그것도 내 에너지가 지치는 정도까지는 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기셨다. 나는 선생님께 건강하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밖에서 사모님이 다음 예약을 잡으려 하셔서 “저 다음 예약 안 해도 된대요”라고 대답했더니 사모님이 너무 잘되었다며, 좋은 소식이라고 기뻐하셨다.
사모님께도 건강하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눅눅하게 비 오던 여름날, 욕을 하며 걸어 올라왔던 이 평창동 산꼭대기 병원에 이렇게 빨리 마지막 날이 올 줄 몰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저 나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부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오늘은 선생님이 ㅇㅇ님은 잘 이겨내실 거예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세 번이나 반복했던 날이었다. 아마도 지난 몇 달간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중에 나에게 가장 힘이 되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