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카디건

by 투명구름

2년쯤 전이다. 유튜브에서 이 카디건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손 염색실을 판매하는 분이 운영하는 채널이었는데 나는 이 빈티지한 색감과 정교한 문양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그때 내 뜨개 실력은 이제 겨우 카디건 하나를 완성했을 뿐이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망설이다 몇 달이 지났고 그동안 도안이 실린 잡지는 국내에서 모두 품절되었다. 이젠 직구로 도안을 구매하는 데만 7만 원이 드는 형국이다. 나는 미련 없이 마음을 접었다.


그 후 일 년 동안 몇 개의 카디건과 스웨터, 모자, 가방 등을 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내내 저 레이스 문양 가득한 카디건이 가득 차 있었는데, 비슷한 도안을 봐도 언제나 내 입에서는 “그게 제일 예쁘네” 하는 말이 나왔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근데 그 정도면 이건 갖는 게 맞아. 네가 살면서 비슷한 어떤 카디건을 뜬다 해도 너는 그걸 가지지 못해서 내내 생각이 날 테니까” 나는 단번에 설득당했다.


겨울이 시작될 즈음 핀란드에서 도안이 실린 잡지를 직구로 구매했다. 일 년이 지나 가격이 좀 내려갔네? 하면서 배송비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해 준 대로 실도 구매했다. 전체적으로 실은 3가지로 구성되는데, 그중 손 염색실은 워낙 소량 생산이라 알람 맞춰 구매 창이 오픈되기를 기다려 겨우 구매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걸 실케팅이라고 했다. 덕분에 인생에 유난스러운 경험을 또 더했다. 지금까지 쓴 돈 만으로도 백화점 가서 제대로 된 울카디건을 사고도 남겠다. 하지만 설렘은 감출 수 없었다.


실을 모두 준비하고 제작에 필요한 바늘도 새로 장만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먼 길을 날아온 책을 기쁜 마음으로 열었는데 영문으로 된 도안은 모두 뜨개 약어로 이루어져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믿고 있던 파파고도 읽어 내지 못했다. 절망의 순간 나는 다시 정신을 부여잡았다.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한 줄 한 줄 암호나 다름없는 도안을 해석해 나갔다. 그럼에도 진척이 나지 않아 뜨개 사전 격인 책을 한 권 더 구매했다. 도대체 나는 카디건 하나를 갖겠다고 얼마를 쓰는 것인가? 이쯤 되니 누가 이 애달픈 바보짓을 알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어도 나는 도안을 1/3 도 이해하지 못했다. 뜨고 풀고를 반복하고, 던져뒀다가 다시 잡고, 도저히 도안을 이해 못 하는 날에는 그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나는 점점 창작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어떻게든 떠서 입기만 하자! 나는 목표를 소박하게 수정했다. 전체 과정 중 가장 클라이맥스는 앞, 뒤판을 모두 뜨고 드디어 어깨 이어 붙이기를 하던 중 품이 너무 크다는 걸 인지하고 다 풀어서 다시 시작한 사건이다. 실을 푸는 내내 손이 떨렸다. 내 마음은 분해서 더 떨렸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했지만 아직도 어깨 경사와 넥라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역시 배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하지만 너무 우습게도 나는 도안의 도식화 하나를 보고 끝까지 뜨는 힘을 얻었다. 연꽃무늬가 몸판에 7단, 소매에 5단. 드라마틱한 문양의 볼륨을 살리고, 옆구리 부분은 소매가 닿는 부분이니까 굳이 무늬는 안 넣어도 되겠다. 이렇게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이쯤 되니 애써서 도안을 왜 구매한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이 도식화가 나를 살렸다.


마침내 나는 한 달 만에 드디어 카디건을 완성했다. 여전히 내 눈엔 잘못 뜬 부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적당히 쉬엄쉬엄 뜨는 게 절대 안 되는 나라는 인간은, 간사하게도 도안 실수는 흐린 눈으로 기꺼이 넘어갔다. 어찌 되었든 결말을 맞이한 나의 카디건은 아름다워 미칠 지경이다. 처음 도안이 도착했을 때 암호 같던 뜨개 약어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이 프로젝트에 돈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줄 한 줄 나아감에 내 망설임과 불안을 담았다. 푸르시오를 결정했던 순간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후회로 점철된 수많은 밤을 나는 기억한다. 이 카디건은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드라마다. 애먹인 프로젝트였지만 카디건을 완성하고 나의 뜨개는 약진했다. 모든 경험은 기꺼이 훗날의 이유가 된다. 아무도 묻지 않지만 나는 이 옷을 입고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맞아요! 이거 제가 뜬 거예요!”

초등학교 시절 엄청 티격태격하던 짝꿍을 결국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게 애증이라는 걸까?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아쉬움으로 남을까 봐 시작했던 나의 뜨개 프로젝트는 영원히 잊지 못할 애증의 경험으로 각인되었다. 그때 알았다. 아마도 이 뜨개를 오래도록 놓지 못할 것 같다고. 지금 나에게 이 점은 무척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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