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고마움, 꼬치어묵

아홉 번째 끼니

by 초삐


_꼬치어묵을 와구와구 먹고 싶었다. 바깥에서 사 먹으면 비싸니까. 게다가 왕창 먹기에는 조금 창피한 걸. 말 그대로 흡입하고 싶던 영하의 날.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잘 익은 배추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 팥이 가득 들어 꼬리가 유난히 바삭한 붕어빵. 달콤한 설탕과 계피향이 좋은 곱게 눌린 호떡 같은, 겨울은 그런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꼬치어묵. 연신 김을 내뿜는 뜨끈한 국물에 잠겨 있는 어묵들. 국물도 좋지만 꼬치에 꿰인 어묵에 간장을 발라 크게 한 입 먹으면 참 맛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온기. 종이컵에 국물을 따라 곁들이면 더 바랄 게 없다. 겨울이 아니면 모를 이 맛. 추워야 안다. 따뜻한 것의 가치를.



_어릴 적 지하철 4호선 이수역 앞에는 포장마차가 꽤 많았다. 떡볶이, 순대, 튀김. 입맛에 따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 갈 수 있었다. 오래된 밤빵집도 있었고 오징어, 문어발, 쥐포 같은 건어물을 즉석에서 구워 파는 집도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단물’을 파는 간이 업장도 있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면 언제나 간식들이 유혹했다. 안 먹을 수 없었지.


그때는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 친구들이랑 한가득 몰려가서 이것저것 시켜 먹었다. 우리는 각자 메뉴를 시키는 법이 없었다. 항상 함께 어떻게 먹을지 조합을 짰다. 떡볶이와 순대는 물론이고 튀김까지. 음식은 늘 풍성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눠 먹었으니까.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여길 찾았고 포장마차 분식집은 학교 밖 또 다른 교실이었다. 비닐천막을 살짝 들어 입장한 뒤에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구겨 앉으면 그곳이 곧 우리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지나갔다. 과거가 되었다.



_어릴 적 그렇게 자주 오던 곳인데, 이제는 오는 일이 드물다. 아주 가끔 퇴근길에 잠시 들러 가볍게 먹을 때는 있다. 이제는 그렇게 종종 혼자 온다. 옛날에는 없던 1인분 세트가 생겼더라. 떡볶이 조금에 튀김 두 개가 한 세트. 친구들과 조합을 짜며 풍성하게 먹던 그 식탁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더 조용했고 간단했고 빨랐다. 먹는 속도가 아니라 돌아서는 속도가 빨랐다. 오래 서 있으면 어딘가 눈치가 보였고 눈치가 보이면 괜히 더 빨리 비워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나이에 혼자 서서 분식을 먹는 게 그리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서서 어묵 국물을 마시는 게 어느 사이 어딘가 어색해져 버렸다. 너무나 당연했던 내 추억이 이제는 나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변한 건 환경만이 아니었다. 예전보다 영업하는 포장마차가 줄었고 모습도 어딘가 깔끔해졌다. 쥐포를 구워 팔던 집과 밤빵집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없어지고 달라진 거리의 풍경처럼 나도 변한 거다. 그래서 그때가 더 멀게 느껴지는 거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내가 이미 없으니까.



_‘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꼬치어묵을 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묵 먹으며 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뜨끈한 국물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고요해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것에는 제 시간이 있다. 겨울이면 겨울에 맞는 것들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계절이 내미는 손을 잡는 것. 그게 계절에 대한 예의다. 삶을 재미있고 풍성하게 사는 법이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분식을 나눠 먹던 때가 있었고 혼자 서서 국물을 마시던 때가 있는 거다. 모두 그 시절의 나에게 맞는 시간이다. 지나고 나면 더 확실하게 알겠지. 아, 그때가 그때였구나.



_모든 것에는 거기에 어울리는 때가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때가 있다. 좋을 때가. 가장 후회되는 건 그런 거다. 그때가 바로 내게 어울리는 그때였음을 지나고 나서야 아는 거다. 아, 그때가 그때였구나.


계절이 늘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듯이, 마음도 늘 같은 온도로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온도는 한 번 식으면 다시 데우기가 어렵다. 그러니 지금 네 앞에 있는 사람이 사랑을 허락한다면 열심히 사랑해라. 잠깐의 수고로움에 매몰되어 더 소중한 가치를 잊지 마라. 비효율적인 사랑을 해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하고 굳이 멀리 돌아가는 길을 걷고 쓸데없이 오래 고민해서 고른 선물을 건네는 그런 사랑. 효율적인 사랑이란 애초에 모순이다. 사랑은 원래 비효율적인 거니까.


생각 대신 행동해라. 네가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아무리 진하게 사랑해도 그 사람은 모른다. 사랑은 생각하는 시간과 마음의 크기로 전달되지 않는다. 네가 입으로 하는 말과 네가 하는 행동이 소중한 사람에게 닿는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그 사람의 웃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라.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 돌릴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건데 뭐가 그리 아깝고 생각이 많아. 아깝지 않잖아. 생각할 것도 없잖아. 그냥 하면 된다.


그게 사랑답다.



_집에서 꼬치어묵을 끓여 먹으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너에게 해 주고 싶다고.


우리의 처음은 겨울이 아니었다.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공기는 아직 완전히 차갑지 않아 걷기 좋았고 해는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었다. 그 가을, 어느 공원에서 너는 고맙게도 나를 허락했다. 그리고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더 단단히 확인한 계절은 겨울이었다.



_겨울은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계절이다. 추워지면 괜히 대충 굴 수가 없다. 한 번 더 묻게 된다. 집에 잘 들어갔는지. 밥은 먹었는지. 따뜻하게 입었는지. 그런 확인들이 쌓여서 관계의 온도가 된다. 거창한 고백보다 사소한 챙김이 더 깊이 남는다. 겨울에는 특히 그렇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자주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이 결국 관계를 만든다. 따뜻한 국물을 한 번 더 떠 주며 온기를 건네고 뜨거우니 천천히 먹으라고 말해 주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우리는 지금 함께 있다는 확신이 된다.



_머릿속으로 이미 식탁이 차려졌다. 라면 사리를 넣은 떡볶이를 자글자글 끓이고 라이스페이퍼로 만든 간단한 김말이튀김을 바삭하게 튀긴다. 거기에 꼬치어묵을 냄비째 올리는 거다. 포장마차 한 판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은 식탁. 우리 둘만의 포장마차. 바깥에 찬바람이 불어도 상관없다. 창문에 김이 서려도 상관없다. 와구와구 먹고 배가 부르면 따스한 차를 한 잔 우려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거다. 별것 아닌 이야기.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하고 싶은 것, 주말에 뭘 먹을지 같은. 그런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의 겨울이 되는 거다.


혼자 서서 먹던 분식이 어색해진 내가 다시 누군가를 위해 식탁을 차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 네 덕분이다.



_겨울이 지나기 전에 이 글을 쓴다. 너와 함께 보내고 있는 이 겨울에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겠지. 물론 마주할 봄도 찬란하겠지. 하지만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너와 함께 보낸 이 겨울이 아름다웠기에.


꼬치어묵. 겨울이면 참 흔한 음식이다. 어디에나 있는 음식. 특별할 것도 없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간식. 하지만 나는 이제 이 평범한 음식을 볼 때마다 어느 추운 주말 겨울에 끄적거린 글을 떠올릴 거다. 우리가 마음을 더 깊이 확인한 계절을.



_겨울이 참 추웠다. 그래서 난 더 따스했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지금 이 계절을. 너를. 이 때를.

모든 것에는 때가 있으니까. 지금이 바로 그때니까. 우리는 지금을 더 따뜻하게 만들면 된다.


우리집 부엌_26년 2월 8일_군두부와 삶은 계란을 넣은 꼬치어묵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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