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향기로 알게 된 사랑, 휘낭시에

여덟 번째 끼니

by 초삐


_휘낭시에는 작다.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틀에 구워진 작은 과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버터와 아몬드가루로 만든 반죽은 달콤하면서도 고소해서 한 입 먹고 나면 입안에 향이 은은하게 머문다. 기분 좋은 잠깐이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내 일상을 행복하게 바꿔 주었다.



_이 과자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금융가’를 뜻한다. 반듯한 직사각형이 마치 금괴처럼 생겨 모양도 그럴듯하다. 바쁘게 일하는 금융가 사람들이 먹을 때 양복에 부스러기를 묻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금융’이라는 너무나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 실용을 위해 태어난 과자지만 내게 휘낭시에는 실용의 반대편에 서 있다. 무엇을 효율적으로 해내게 하는 대신 마음을 느리게 만들고 자꾸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쪽에 가깝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줄 간식치고는 제법 비싸다. 비효율의 극에 있는 녀석이지만 내게는 이 아이가 무엇보다 큰 효율이 된다. 어디를 향하는지조차 몰랐던 내 마음을 나보다 먼저 알아차리게 했으니까.



_4년 전, 회사에 입사하고 너를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파란색 스웨터. 옅은 갈색 머리카락. 그 색의 조합이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내 시선을 오래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예쁜 색으로 옷 입는 얼굴도 예쁜 사람.’


그 참 단순한 첫인상 다음엔 더 단순한 생각이 따라왔다.


‘친해지고 싶다.’


같은 회사였고 나이 차이도 컸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나는 늘 후자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들곤 했다. 마음이 있는데도 주저했다. 마음이 가고 싶은 대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붙들었다. 말은 늘 사무적으로 골랐고 발걸음은 먼저 돌아서 멈췄다.



_그러던 어느 날, 맛집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일하던 포토그래퍼가 간식집을 추천해 줬다. 홍대에 있는 리틀빅토리. 거기서 파는 구운 과자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특히 까눌레를 잘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처음 제대로 된 휘낭시에를 먹었다.


정말 웃음이 바로 나올 만큼 너무 맛있었다. 버터는 단지 고소한 맛이 아니라 더 깊은 풍미와 향으로 남았고 아몬드가루는 퍽퍽함 대신 촉촉한 밀도를 만들었다. 겉은 얇게 깨지고 속은 단단히 버텼지만 깨무는 순간 입안 가득 버터 향이 부드럽게 퍼졌다. 전에는 몰랐던 맛. 너무나 행복하게 해준 그 맛을 본 순간 나는 누구보다 네 생각이 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너였다. ‘이렇게 맛있다면 그 사람도 좋아할 거야.’ 내가 느낀 커다란 행복 뒤에 네가 따라왔다. 그 생각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때 나는 알아차렸다.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너를 참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휘낭시에가 먼저 말해 줬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라고 나를 깨웠다.



_사랑은 거창한 고백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찾느라 괜히 동선을 늘리는 마음. 한 개면 될 것을 두 개 사는 마음. 말로는 못 하던 것들이 손끝의 작은 선택으로 먼저 드러난다. 나는 그 사실을 휘낭시에로 배웠다.


그 뒤로 나는 휘낭시에 맛집을 찾아다녔다. 유명하다는 집을 몇 군데나 다니며 겉이 더 바삭한지 버터 향이 더 진한지 어설프게 비교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기준의 결론은 늘 하나였다. 네가 맛있게 먹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_그 기준을 훌륭하게 통과해 내가 한동안 정착했던 곳은 연남동의 ‘보통공간’이었다. 지금은 마포에서 ‘부부제빵소’라는 이름으로 새로 문을 연 그곳이다. 회사에서 버스로 20분쯤 걸리는 작은 가게로 향할 때마다 나는 네게 연락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티가 나지 않도록 조금은 무뚝뚝하게.


“지금 휘낭시에 사러 가는데 어떤 맛 드시고 싶으세요?”


너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네가 행복했으면 했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반복했다. 자주 간식을 사러 다녔다.



_너는 보통 두 가지 맛 사이에서 잠깐 고민했다. 우리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잠깐이 좋았다. 그 짧은 망설임으로 만들어진 대화가 내가 너에게 허락받은 작은 자리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여겼다.


사실 네가 어떤 걸 골라도 괜찮았다. 항상 네가 먹고 싶어 했던 맛을 모두 샀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나 하나만 줬다. 가장 평범한 맛으로. 하지만 너는 달랐다. 언제나 두 개였다. 그것도 네가 좋아할 맛으로. 아무도 모르게 네 책상 위에 조용히 놓고 돌아섰다.



_그 시절의 나는 아주 소심한 방식으로만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다. 큰 고백 대신 작은 반복이었다. 과자를 사고 맛을 묻고 네 책상 위에 조용히 놓고 오는 일. 그렇게 쌓인 순간들이 내게 알려 줬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괜찮다고. 작은 정성도 결국 전해진다고. 휘낭시에가 그걸 증명했다. 손바닥만 한 작은 간식이지만 행동이 반복되고 변함이 없으면 마음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반복은 정직했다. 주는 일이 쌓이자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늘었고 퇴근 후에도 만나게 되었고 주말에는 근교로 나가 바람을 맞기도 했다. 처음엔 ‘친해지고 싶다’였던 내 마음속 문장이 어느 순간 ‘보고 싶다’로 바뀌어 있었다. 너와 조금이라도 더 마주치고 싶어서 출퇴근 시간도 슬쩍 바꿨다. 너와 마주칠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 더 부지런해졌다.


그런 시간이 쌓인 덕분에 가까워졌고 너무나 행복하게도 우리는 ‘우리’라는 말이 어울릴 연인이 되었다.



_나는 너에게 고맙다. 내가 건넨 작은 과자를 받아 줘서 고맙다. 그 서툰 마음이 단지 간식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봐 줘서 고맙다. 그리고 ‘우리’라는 말을 가능하게 해 줘서 고맙다.


이제는 ‘회사’라는 곳에서만 너를 좋아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넓은 ‘삶’에서 우리는 사랑할 거다. 몰래가 아니라 당당하게. 책상 위에 올리는 작은 과자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보다 이제는 네 손을 잡고 여러 곳을 다니며 함께 추억을 쌓을 거다.



_작은 과자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괜찮다는 것. 작은 정성도 결국 닿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쌓인 시간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는 것.



_우리를 만든 계기는 작은 휘낭시에였지만 내 마음이 닿을 곳은 늘 같다. 너 외에는 다른 곳이 없다.

고마워. 그 작은 봉투를 받아 준 것도, 그 안에 들어 있던 내 마음을 받아 준 것도.
퇴사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몰래 두지 않을 거야. 네 손을 잡고 자주 말할 거야. 오늘도 사랑한다고. 그리고 내일도 그럴 거라고.

시작은 휘낭시에였지만 끝은 언제나 너다.


카페몽떼_26년 1월 23일_라즈베리 휘낭시에 & 캐러멜 호두 휘낭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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