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달래는 솔직함, 선지해장국

일곱 번째 끼니

by 초삐


_퇴사를 결심했다.

우리 팀은 원래 네 명이었고 나는 그중 셋째였다. 위로는 팀장과 선배, 아래로는 한참 어린 막내가 있었다. 우리는 주로 책을 만드는 출판 일을 했다. 문장을 이어 마지막 교정을 끝내고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들. 늘 마감 직전에야 숨을 고르는 자리였다.

바쁘지만 괜찮았다. 원래 그런 일을 해 왔으니까. 다른 사람 눈에는 일이 많아 보여도 그게 일상이던 우리는 괜찮았다. 안 괜찮은 건 업무를 모르는 어떤 이의 참견이었고 오로지 숫자에만 매달린 실적 압박이었다.

이를 가장 정면에서 마주하던 팀장이 먼저 나갔다. 다음은 선배였다. 팀장의 역할까지 자기가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세 번째는 막내였다. 회사의 지시를 이해하려 시도했던 아이. 부당한 지시는 이해보다 거절이 빠른 법인데, 그 아이는 끝까지 납득하려 했다. 그런 와중에 개인 사정까지 겹치자 결국 퇴사했다.

이제 남은 건 나 하나였다.


_회사가 사람을 충원할 거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래야 했으니까. 그러나 석 달이 지나 계절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는 사람을 뽑기보다 남아 있는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쪽을 택했다. 무적의 단어가 된 효율성. 그 말 아래 나는 조용히 죄이고 결국에는 부려졌다.


_네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 할 수 있게 되면 안 된다.

그건 내 체력이 강하거나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세 사람 몫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퇴사한 그들의 시간과 노동은 아주 가벼워진다. 고작 한 사람분도 아니었다는 결론으로 끝나 버린다. 그 결론을 나는 내 몸으로 증명하고 싶지 않다.

요구했고 부탁했고 사정했다. 사람 한 명만 더 뽑아 달라고. 그러면 이전보다 더 나은 팀을 보여 주겠다는 내 외침에 회사는 화답했다. 지원을 약속했고 인력 충원을 수락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약속도 수락도 행동은 없었다. 그 약속도 수락도 모두 말에 그쳤다. 정말 모두. 그렇게 말로만.


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이 있기는 했다. 사람을 뽑아 준다고 말한 뒤 사람을 뽑을 수 없는 조건으로 구직 공고를 올렸더라. 지원자는 우리 팀의 성격과는 멀었다. 뽑고 싶지만 뽑을 사람이 없게된 예정된 결론.

내게 했던 말은 모두 거짓말이 됐다.

거짓말은 때로 배신보다 더 악질이다. 배신은 적어도 관계가 깨졌음을 인정한다. 분명한 선을 긋는다. 하지만 거짓말은 선을 긋지 않는다. '곧'이라는 말로 상대의 시간을 계속 가져간다. 거짓 희망으로 버티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들고 결국은 스스로를 탓하게 만든다.

이런 결론을 겪고난 뒤에야 비로소 늦은 확인을 했다. 나가는 게 맞다고.


_퇴사를 말하자 회사는 달라졌다.

붙잡았다. 대우를 더 좋게 해 주겠다고 했다.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제로 하더라. "행복하게 해줄게!" 회사에만 있으면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까지 했다. 당장 몇 달은 그럴 수도 있다. 따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 번 속았다. 신뢰는 한 번 꺾이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말은 행동이 수반될 때 증명된다. 실행이 없는 약속은 결국 오자가 되고 비문으로 남는다.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더 이상 교정하고 싶지 않다.


_퇴사를 말했다면 퇴사를 해야 한다. 내가 한 말을 내가 번복하는 건 내 말의 무게를 스스로 덜어 내는 일이다. 퇴사를 무기로 처우를 끌어올리는 꼴은, 사랑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연인에게 던져 놓고 반응을 기다리는 꼴과 닮았다. 나는 그런 방식이 싫다. 무엇보다 내 말이 가벼워진다.

나는 내 말을 지키고 싶었다.


_퇴사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식사 약속이 늘어났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의식 같은 걸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밥으로 대신하려는 마음일까. 그날도 그랬다. 옆자리 팀장님이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메뉴를 고르라기에 이것저것 말하다가 선지해장국으로 정해졌다.

그 팀장도 내 처지와 비슷했다. 팀장이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팀원 한 명이 오랜 휴가를 떠나 있었고 몇 달 뒤에나 돌아온다. 그때까지는 혼자 버텨야 하는 팀. 아무도 없이 자리를 지키던 내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_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 어색한 시간. 나는 침묵을 깨고자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남으실 거예요?”

잠깐의 뜸을 두고 그가 짧게 웃으며 말했다.

“나가고 싶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애매해서요.”

“맞아요. 나가는 것도 정답은 아니니까요.”

말은 그 정도로 끝났다. 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팀장은 우선 남기로 한 모양이다. 본인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도 사실, 저렇게 남아 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_해장국이라는 이름은 솔직하다.

해장. 속을 풀고자 먹는 속이 쓰린 사람의 음식이다. 점심에 '해장국 먹을래요'라고 말하는 건 '어젯밤에 술 진하게 마셨어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변명도 포장도 없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속쓰림의 빚을 남겼다는 고백. 해장국은 이름부터 솔직하다.

우리는 해장국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담백한 이야기를 나눴다. 누가 더 힘든지를 겨루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거짓말을 견뎌 왔는지, 어떤 약속이 실행되지 않았는지, 어떤 말이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들었는지를 천천히 주고받았다.

빨간 국물이 우리를 바라보며 대화에 조용히 동석했다.


_뜨거운 뚝배기에서 김이 올라왔다. 고추기름 냄새가 코끝을 치고 콩나물은 점점 숨을 죽였다. 내장은 제 몸집을 숨기지 않았고 선지는 덩어리로 묵직하게 자기 자리를 잡았다. 들어간 것들이 눈에 그대로 보인다.

나는 해장국의 그 솔직함이 좋다. 꾸밀 수 없는 것 앞에서 사람은 덜 불안해진다. 말이 덜해지고 마음이 덜 흔들린다.


_그 뜨거움과 따뜻함의 중간쯤에서 떠올렸다. 나를 응원해 준 사람들을.

내가 나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다. 다행히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생겼고 갈 자리를 열어 준 이도 있었다. 남기로 한 팀장과 내 결정이 달라진 까닭도 그 차이였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나는 더 오래 참으며 스스로를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맙다.

내 주변에 있어 준 누군가에게. 내가 그 결정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준 당신에게. 내가 내 말을 끝까지 지키도록 어깨를 조용히 받쳐 준 사람들에게.

그 고마움이 그날의 국물처럼 뜨겁게 속으로 내려갔다.


_해장국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다.

빌딩숲 사이로 부는 겨울 바람은 차가웠지만 내 속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불편하지 않아 표정이 밝아졌다. 선지해장국이 내게 준 것은 포만감이 아니라 솔직함에 가까운 안정이었다. 뭉근한 열기를 닮은 응원이었다.

거짓말로 달래진 마음은 결국 다시 아프다. 달콤한 말은 혀에서 먼저 끝나지만 뜨거운 국물이 가진 온기는 속에서 오래 남는다. 나는 오래 남는 쪽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차갑다면 온기를 찾으면 된다. 회사는 온기를 주지 않기에 난 찾으러 떠난다.

퇴사를 결심했다.

그 문장을 이번에는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중앙해장 광화문점_26년 1월 14일_한우양선지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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